|
계룡 시민들에게 “계룡을 움직이는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아마도 “특정 기자와 그 기사를 퍼 나르는 시민단체 대표”라는 대답이 낯설지 않게 나올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쥐여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니듯, 특정 언론과 시민단체 대표는 본연의 역할은 망각한 채 ‘망치질’의 유혹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감시자'가 아니라 '공격자'로 변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권력의 나팔수가 된 시의원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비판을 넘어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사실과 균형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지난 4년, 형성된 권력 카르텔 "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시의원은 각각의 위치에서 공공 권력을 감시하는 중요한 축이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부패를 감시하고 시대적 담론의 균형을 잡는 데 있다. 시의원 역시 행정사무감사·조사, 시정질문, 청원심사 등을 통해 지방정부를 견제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계룡의 정치 환경은 이 균형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시를 수행해야 할 주체들이 오히려 결합하여 하나의 이해집단, 즉 '권력 카르텔'을 형성하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권력을 견제하기보다는 특정 권력과 보조를 맞추며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공격의 방식, 즉 가차없는 '닥공'이다. 합리적 비판이나 정책 검증이 아니라, 상대를 무력화하기 위한 감정적 공격과 낙인찍기가 반복된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은 '적'으로 규정되고, 조직적 비난과 여론몰이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증오와 혐오의 정치’, 곧 '갈등 조장'이다. 이렇게 형성된 '적대감과 갈등'은 팬덤정치의 핵심 동력이 되면서 단기적으로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동체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독이 된다. 결국 정치가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편 가르기'와 '진영 싸움'의 장이 되면서 감시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시의원은 정치적 진영의 행동대원으로서 권력·정보·자원을 공유하며 공공의 이익보다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카르텔'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아부'가 하나의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아부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지금은 낯 뜨거운 아부가 오히려 충성의 신호로 해석되며 정치적 보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정당을 옮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공천과 지지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준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에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당적을 바꾸고 곧바로 이응우 계룡시장과 원팀을 외치는 모습은 신념의 변화라기보다 권력의 카르텔 구조 속에서의 생존 전략으로 읽힐 수 밖에 없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6.3 지방선거를 앞둔 작금의 계룡은 권력의 카르텔이 서로 결탁하며 시민의 눈과 귀를 흐리는 구조가 더욱더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4년간 변죽만 두드리며 시정의 신뢰를 잃은 시장과 그와 원팀이 되겠다며 변절자의 아이콘이 된 시의원, 그리고 그들로부터 망치를 건네받은 특정 언론과 시민단체의 일련의 모습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왜곡된 정치 환경은 단순히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된 '왜곡된 기준'의 문제다.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이는 내란과 탄핵이 이어지면서 윤석열이라는 '절대적 악'이 설정되고, 윤석열과의 비교가 이루어지는 한 그 누구도 선하게 보이는 왜곡된 프레임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정상적인 행태조차 ‘그나마 나은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착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 계룡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아부와 무차별적 공격이 거리낌 없이 드러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준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무엇이 정상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워지며 결국 정치적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마저 흐려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시민의 상식과 언론의 책임, 그리고 정치인의 절제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건강한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도 더 자극적인 주장도 아니라, '더 단단한 기준'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 그리고 그 기준을 지키려는 시민의 의지다. 유권자의 '더 단단한 기준'이야말로 권력의 카르텔을 혁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번 선택이 계룡의 정치 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놀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