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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탐방: 연무 진등길 향인미술관] 고향집에서 만나는, 인자한 노화가 #김회직

- 부창부수로 일궈내는 합작품
- 습윤유채, 수묵화 같은 유화 추구
- 음풍농월 딱 좋은 널럴 문화공간

놀뫼신문 | 기사입력 2026/05/05 [09:47]

[미술관탐방: 연무 진등길 향인미술관] 고향집에서 만나는, 인자한 노화가 #김회직

- 부창부수로 일궈내는 합작품
- 습윤유채, 수묵화 같은 유화 추구
- 음풍농월 딱 좋은 널럴 문화공간
놀뫼신문 | 입력 : 2026/05/05 [09:47]
 
4월 문화주간, 김홍신문학관에서는 미술이야기가 펼쳐졌다. 강연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현장으로 이어졌다. 24일 찾은 곳은 연무읍 진등길의 향인(鄕仁)미술관. 길가에 안내간판 하나도 없는 한옥집 미술관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미술관은 올봄 첫 문을 열었다. 관장은 화가이자 문인인 김회직 작가. 하여,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 풍성해진 한마당이 되었다. 문학관에서 세 번에 걸쳐 이어진 미술이야기 속에는 논산이 낳거나 논산을 거친 세계적 화가들 이야기도 나왔고, 논산에는 미술관을 비롯한 문화시설이 부족하다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그런 메아리가 맴도는 가운데 연무대 훈련소가 등 뒤로 둘러싸인 ‘긴 산등성’ 진등길로 접어들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라고 하면, 모던한 전시장과 내로라하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전시회 현수막이 휘날린다. 군부대와 담을 같이하는 향인미술관은, 동네한복판 한옥집이다. 800여 평 대지에 집이 세 채고 나머지는 너른 뜨락이다. 그 뜨락을 모정 하나가 지키고 있다. 3월 21일 개관식 때, 존재감을 드러낸 인지정(仁智亭)이다. 이 정자를 배경 삼아 논산문인협회 회원 20여 명이 시 낭송과 악기 연주가 어우러진 문학잔치를 벌였다.

 

미술관 이름에 대하여 물었다. “우리가 함창 김가인데, 고조 할아버님 존함이 處權, 호는 仁智였어요. 그 仁과 고향 鄕을 따서 제 호로 삼았고, 자연스레 미술관 이름이 된 거죠.” 이 집은 원래 김회직 선생의 생가였다. 도중에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가, 조카가 힘을 써 다시 사들인 경우라고 한다. 김 관장의 고향사랑은 젊어서부터였다. 강경상고를 나와 대학은 서울로 갔다. 군복무 마친 후 미술교사로 일하게 된 곳이 춘천 성수여상. 거기서 3년 근무하는 동안 향수병이 도진 모양이다. 연무여중으로 자리를 옮겼고 30여 년을 미술교사로 봉직하였다. 정년 앞둔 60세에 명퇴하고 나니까 작품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상황.

  

 

아내가 먼저 알아챈 화가의 노후 꿈

 

자식도 다 키우고 이래저래 자유의 몸이 된 후 4반세기 지내는 동안, 책도 한 권 냈다. 『목요일에 만나는 사람』 50여 편의 수필 제목 중 하나인데, 주인공은 부인 강여사다. 손주 봐주기 위해 일요일 서울로 떠났다 목요일 밤이면 돌아오곤 하는... 주말부부로서 유별난 사례는 아니지만, 거기에 담긴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묵직하다고나 할까. 이 책 소제목 중 하나는 “작은 미술관”이다. 전심전력 그려낸 작품들이 나의 사후 흩어져버릴 거 같은 불안을 악몽처럼 느낄 때, 이런 심사를 먼저 캐치하고 고향집을 미술관으로 하자고 제안하고 추진해준 사람도 부인이요 자식들이었단다. 

 

합작이다. 창작의 시간이 고독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독창은 존립불가능일 성싶다. 예술 장르 간의 통섭도 마찬가지. 이야기는 “미술하면서 글은 왜,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로 흘러갔다. <일상을 문학의 영역 안으로 끌어와 미적 구성을 이루어내다> 2019년 ‘책과나무’ 출판사가 뒷표지에 선보인 카피다. 2001년 ‘문학세계’를 통하여 등단한 김 작가의 답은 연애편지다. “졸병시절 집안 사정이 급해서 맞선을 보았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더라구요. 편지를 연거푸 보냈죠. 그 중 아내가 공감한 구절은 ‘내가 50%밖에 안 되지만 당신 50% 합치면 100점이 되니 이러면  굶지는 않을 거다’는 내용였나 봐요.” 

 

편지를 통한 결혼승전보는, 독서량에 힘입은 바 크다. 학창시절 단편소설이란 소설은 거의 다 섭렵했단다. “내 수필 중에 ‘바람소리’가 있는데, 신재기 교수가 ‘소설 같은 수필’이라고 평을 해주더군요.”

 

기실 그의 삶이 한 편의 소설이다. 대학도 서울에서 나왔고 교편도 잡았으니 가난하다고 할 수 없는 살림이다. 그러나 교사의 아내 입에서 나온 외마디는 가렴주구(苛斂誅求)다. “자식 셋 제대로 가르쳐보자니 교사박봉으로는 살림이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동네 여자들 다하는 시보리를 나도 떴더니만 자존심 강한 남편이 그걸 때려 부수고....” 그런 우여곡절 끝에 세 자녀도, 직접 키운 손주들도 자랑스럽기만 한 노년이다. 특히 딸은 미술전공 대학원 졸업 후 화가로 활동 중이니 향인미술관이 부녀미술관으로 바뀔 날도?^

  

  

필생의 과제 습윤유채(濕潤油彩)

 

 “자연을 흉내낸다”는 퇴직자는 벽두새벽부터 정원을 가꾼다. 수련 연못을 직접 가꾸었다는 모네가 그의 모델이다. 그림에서는 자연 중에서도 특히 산을 흉내내는 거 같다. 산바람, 산그늘, 산자락, 산 구름, 산울림⋯ 산에 매료된 그의 작품 중에 산너울이 있다. 크기는 263×141  ‘캔버스에 유채’ 설명이 붙어 있지만 이런 대형캔버스가 어디 있으랴? 병풍 프레임을 활용한 거란다. 둥그런 시계 틀이 액자로 둔갑하기도 하고, 어떤 액자는 대나무를 다듬어서 제작한 맞춤형이다. 

 

미술 전 장르를 넘나드는 그에게 시화가 빠질 리 없다. 그 시화 주변에는 종이와 사진이 삽입돼 있다.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작품소재요, 재료요 도구다. 그가 아껴서 책표지화로 등극시킨 작품은 <산바람-하얀 새>.  그는 2013년 어느날 아침부터 캔버스에 하얀 새를 가두기 시작했단다.  하얀 새 일흔 마리를 너른 화폭에 담아 넣고 古稀 두 글자 촘촘 새겨넣은 칠순 기념화다. 

 

  

내용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지만, 기법에서도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아가는 그다. 습윤유채(濕潤油彩) 사전에 없는 말이, 여기서는 화두다. 수묵화에서 가능한 먹물번짐, 습윤은 유화작가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수묵화 같은 유화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어느날 그같은 의문에 사로잡힌 그는 4년 후 <겨울야산>을 선보인다. 관람객에게서 기대했던 반응을 들은 것이다. 그가 여생을 걸어보겠다는 화두는, 촉촉 습기가 느껴지는 “습윤유채”다. 

 

 

▲ 2026-04-24 김홍신문학관 미술이야기팀의 미술관 탐방     ©

 

논산땅, 예술적 자궁

 

김회직 작가는 화가로서 보란듯한 일가를 이루지 못한 게 아쉬운 모양이다. 글에서도 본인의 한계를 인정한다. 다만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다 시도해보니, 그 점에서는 여한이 없다는 심경으로 읽혔다. 

 

화가에 대한 인정은 천차만별이다. 상대적으로 볼 때 중앙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대성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이런 통념을 깨고, 지방작가로서 세계 미술 시장의 블루칩이 된 사례가 있다. 유성하 교수는 김동유 화백을 클로즈업하면서 “15년간 논산 벌곡의 폐교에서 지독한 가난과 고립 속에서 이룩한 로컬리티의 역설”이라고 표현한다.

 

어디 김동유뿐이겠으랴. 논산에 미술관이 있니 없니 하지만, 논산에는 뉴욕 무대까지 진출한 화가도 있고, 독학으로 자기 세계를 일군 작가도 적지않다. 이호억 화가의 경우는 연산문화창고, 논산문화원, 소금문학관, 물빛문화공간, 바람의 언덕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삼전리에는 그의 개인작업실이 있다. 은진면 이혜경 작가의 프리비젼스 아뜰리에, 노성면 교촌리 오종근 화백 화실, 죽림리 윤두식 서예가의 공간은 갤러리급이다 

 

황룡재로에는 선화기독교미술관 간판도 보인다. 마애석불 하면 서산이 주로 거론되지만, 그 부조상이 네 곳에나 포진해 있는 곳이 논산이다. 논산땅은 글, 글씨, 그림뿐 아니라 중고제, 풍물 등의 음악과 전통 문화가 넘쳐나는 예술적 자궁이다. 향인미술관은 음풍농월하기에도 딱 좋은 널럴 문화공간이다. 이수영 서예가의 통키타 소리와 음색이 여운으로 남는다. 

 

- 이진영 편집위원

 

 

▲ 2026-03-21 향인미술관 개관식 때 논산문인협회원들     ©

 

  

대나무처럼 살라 하네
— 향인미술관에서 만난 하루 
 

▲ 향인미술관 초입의 진등길 느티나무     ©

▲ 작품을 자연스레 빛내주는 대나무 액자     ©

 

길이 막혀 늦게 도착한 향인미술관, 그러나 첫 만남은 낯설지 않았다. 문을 여는 순간, 오랜 시간을 건너온 듯한 따뜻함이 먼저 다가왔다. 두 분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조용하고 깊은 온기로 맞아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긴 생이 머물러 있었다.
 
수필집 《목요일에 만나는 사람》을 읽는다. 문장은 읽히기보다 들려온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 사랑을 눌러 담아 건네던 말들. 선생님은 삼대를 잇는 지혜처럼 아내를 이야기하셨다. 스물아홉의 결혼,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미술과의 인연, 그리고 평생을 쌓아온 ‘습윤유채’의 세계. 그날 들었던 이야기들은 책 속 문장과 겹쳐지며 하나의 삶으로 다시 살아났다.
 
향인미술관에는 김회직 선생님이 평생 그려온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림 앞에서 선생님은 하나하나 이야기를 건넨다. 그림으로 살아온 삶을 설명하는 목소리, 그 짧은 순간 속에서 오랜 시간이 고요히 펼쳐진다. 선생님의 그림에는 유독 산이 많았다. 형상도, 느낌도 일반적이지 않은 산들, 오직 그분의 사유와 마음으로 빚어낸 풍경. 공간을 가득 채운 산 그림 속에서 나는 고요를 만나고, 두근거림을 느끼며, 자비를 배우고, 마침내 내려놓음을 마주한다.
 
선생님은 ‘생각의 눈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셨다. 산을 마음으로 옮겨와 그리고 또 그리며 삶을 겹겹이 쌓아가는 일. 사십 년을 그리며 살아온 얼굴에는 이제 비워낸 자리의 평온이 머물러 있었다. 속이 빈 대나무처럼 비워낼수록 더 단단해지는 삶. 그날, 선생님의 삶은 한 문장으로 남았다. 대나무처럼 살라 하네.
 
김홍신문학관에서 주관한 논산미술 이야기에 참여하며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났다. 유성하 교수님, 김회직 작가님, 그리고 이름으로 다 담지 못한 사람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일생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운다. 함께하지 못한 이들의 자리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만남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시간 위를 걷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만난 인연들은 조용히 쌓여 삶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든다.
 
그날의 향인미술관은 한 사람의 삶과 마주하며 나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여운 속에서 조용히 되뇌인다, ‘대나무처럼 비워내며 살아가리’라고.
 
- 김선순(시인·봄봄문학상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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