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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셨다
종일 봄비가 오신다. 오래 기다렸던 사람이 오는 것처럼 반갑다. 봄이 겨울잠에서 깨었을 무렵, 비가 자주 오셨다. 밤새 오줌을 참았던 아이처럼 눈을 뜨자마자 연거푸 비가 오셨다. 처음에는 반가워하다가 거듭해서 비가 오시니 ‘이젠 그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을 아시기나 하는 것처럼 비가 그치더니, 봄 가뭄이 들었다. 풀을 뽑느라고 조금만 땅을 파도 먼지가 풍겼다. 다시 어서 비가 오시기를 고대하였다. 세상은 이렇게 넘쳐도 문제이고 모자라도 문제다. 뭣이고 정도에 맞아야 하는데 그러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일기예보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기다리는 비는 오시지 않고, 날마다 반짝 빛나는 햇살이 야속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비가 오신다는 소식이더니, 가랑비일망정 오래 내리면 가뭄은 해소될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창밖을 내다본다. 비가 오시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비가 오시지 않으면 풀이나 나무, 사람도 살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도 비가 없이는 생명을 부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비를 대접하여 ‘오신다’고 하기로 했다. 모처럼 오시는 비가 그칠까 봐서 조바심했다. 가늘어졌다 조금 더 굵어졌다를 반복하더니 점심때가 지나서 새들이 날아다녔다. 새들은 비가 오실 때는 숨어 있다가 비가 그치면 재빨리 다시 먹이를 찾아 길을 나선다.
분수에 맞추는 일
아내를 채근하여 모종을 사러 갔다. 모종을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여기저기 모종을 파는 가게가 많아서 아무 데나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 모종을 살 수 있다. 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그 수를 정하는 일이다. 이 역시 넘쳐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느 해는 완두콩을, 또 양파를 심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실패한 농사가 더 많았다. 몸에 배지 않은 농사는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농사의 일을 줄이는 꾀를 내어 올해는 참깨만 심기로 했다. 품종을 줄여 일을 줄이고자 하는 계책(計策)이다. 그런데 남의 농사를 보면 나도 모르게 샘이 나서 이것저것 심는 꼴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올해도 이미 양파와 감자를 심었다. 또 수시로 먹어야 하는 자잘한 것들을 그때그때 얻기 위해서 품종을 늘였다. 상추며 쑥갓, 한 번 심어 두면 저절로 자라는 정구지, 하얀 꽃이 아름다운 완두콩, 씨가 있어 뿌려 둔 시금치 등 다시 백화점이 되었다. 생강은 심지 않는다고 몇 번을 다짐하였으나 시장에 갔다가 마음이 변했다. 어떤 곱상한 할머니가 씨 생강을 사고 있어 걸음을 멈추었다. 파는 이와 주고받는 얘기가 들을 만하여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보니 생강이 아니라 울금이었다. 생강은 이미 심었노라 했다. 생강을 보니 하얗게 싹이 돋아 있었다. 그냥 심어 두면 잘 자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강은 그 맛도 맛이려니와 그 잎이 마치 화초 같아 내가 좋아한다. 그래서 사고 말았다. 상인은 내가 서툰 농사꾼인 걸 알고 친절하게도 생강을 심기 좋게 쪼개 주었다. 또 덤으로 두 조각을 주고, 울금도 심어 보라며 다섯 개를 얹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래저래 품종이 늘었다. 오늘도 다시 고추 여덟 개, 가시오이 여덟, 가지 둘, 토마토 두 포기를 샀다. 그치는 막바지 잔비를 맞으면서 모종을 심었다. 아마도 그 모두가 내 기대를 어긋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에 홀로 앉아 생각하니, 조그만 구멍가게를 열어 소일한다는 것이 온갖 잡동사니를 다 취급하는 만물상이 되고 말았다. 큰 것이 아닌 작은 것들에도 이처럼 욕심을 억누르지 못하다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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