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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기 초대전] 바람의 언덕에서 “시간을 보다”

- 회색빛 골판지에 새긴 시간의 무늬
- 산노리 날맹이에서 만나는 용기, 민용기
- 바람의언덕갤러리에서 4월 26일까지

놀뫼신문 | 기사입력 2026/04/21 [16:52]

[민용기 초대전] 바람의 언덕에서 “시간을 보다”

- 회색빛 골판지에 새긴 시간의 무늬
- 산노리 날맹이에서 만나는 용기, 민용기
- 바람의언덕갤러리에서 4월 26일까지
놀뫼신문 | 입력 : 2026/04/21 [16:52]

 

 
지금 산노리에서는 자연문화예술촌이 대공사 중이다. 산노리가 문화촌이다 보니 그 연장선상에서 예술촌이 들어서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도 지상천국이 있다면 산노리 평매마을이지 않을까 싶다. 길 옆에 없는 과일이 없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과수원길이다. 문화적으로도 별천지다. 식당도 그러하지만 주택도 별장분위긴데 예술인들 둥지 같다. 이런 분위기의 꼭지점, 사령탑 같은 곳이 있다. “바람의 언덕  갤러리” 
 
9년 전, 이현주 관장이 이곳에 들어왔다. 전시, 공연, 스몰웨딩 등  문화기획을 펼쳐왔다. 이름은 물론 이미지가 갤러리로 굳어지면서 한달 어떤 때는 두어 달에 한번꼴로 미술전시회를 열어왔다. 일전 기자가 찾은 때 민용기 작품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 타이틀은 “시간을 보다”, 민용기 개인전으로서는 세 번째다. 2021년 여름 <지나갔으나 그리운 것>이 첫 번째, 3년 후의 봄 <회색빛 추억>은 두 번째다. 
 
기자는 첫 번째 개인전을 봤다. 5년이 지난 후 만난 작품들은 닮은듯 다른듯이다. 세월 탓일까, 거칠던 야성미가 차분해지고, 그 자리에 세련미가 앉았다. 본질은 그대로겠지만 기법이나 방법론에서는 약간씩 변화를 거쳤는지 모르겠다. 유화 물감의 돌출된 질감 대신, 골판지와 도자기를 붙여 솟아난 양각이 역동성으로 오가는 이의 시선을 이끈다.
 
정규코스로 배우지 않은 미술이기에 작가 특유의 독창성이 펼쳐지는 듯싶다. 설명을 들어보니 작품마다 음악을 녹여놓았단다. “이번 전시회에서 민용기 작가의 더 깊어진 색채 그림은 가슴 깊은 곳에서 전해지는 무언의 소리를 들려주는 거 같아요.” 이현주 관장의 워딩 ‘소리’ 속에는 당연 음악 포함이다. “그의 작품은 묵직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음색을 닮아있는 거 같아요, 심연을 가만 터치하는, 인간 음성과 흡사한 음색요~” 한참 들여다 본 다음 느낌을 가감없이 발하는 관람객 목소리도, 바람의 언덕에서는 자연의 소리로 들린다. 
 
심미안에 부족함을 느낀 기자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하나는 작품에서 음악이 들린다는 관객의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전시회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작가 자신의 소회다. ‘바람의 언덕’은 전시장이 센터 중 센터지만, 뷰는 2층이랄 수 있는 옥상이다. 거기서 탑정호를 조망하며 눈에 담아온 시간을 반추하는 관객의 소리부터 중계한다. 
 
 


[민용기가 우리에게 소환해주는 것들] 
 
라면박스 속 골판지의 시간
 

 

 

민용기 작가의 작품들은 갤러리 밖의 봄빛과 사뭇 다르다. 추상과 구상의 중간쯤에 위치한 듯한 그림들은 어느 화면에나 다양한 깊이의 회색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 겹은 평면으로 펼쳐지기도 했지만 칼로 긁고 손으로 뜯어낸 골판지와 종이죽으로 마띠에르로 삼아 입체처럼 보이는 효과를 냈다. 잎이 우거지기는커녕 잎이 한 두 개만 붙어있는 모습, 붉은 색 작은 꽃들이 천지 사방으로 흩어지는 장면, 집인지 벽돌인지 애매모호한 형상이 불러일으키는 텅 빈 느낌. 
 
작품을 보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제목이 없다 보니 무엇을 그렸는지,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를 생각하느라 작품 앞에 한참을 머물러야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 같은 관람객의 상상력과 자유도를 고려해서 작품명을 달지 않다고 한다. 
        
 
종이죽에 대한 기억 한 자락
 

 

 

초등학교 시절 방학책에 ‘탈바가지 만들기’ 과제가 나왔다. 방학책에 나온 것은 하나도 빼지 않고 풀고 만든 덕에 개학 날 양손에 가득했던 방학숙제 가방 속에는 종이죽 탈바가지가 있었다. 
 
종이죽은 신문지나 휴지 따위를 물에 불리고 거기에 물풀을 쑤어 섞어서 접착력을 더한 것인데, 이것을 플라스틱 바가지 거죽에 눈, 코, 입자리를 비워가며 붙인 후 하루나 이틀 동안 말린 다음, 색칠을 해서 도깨비도 만들고 하회탈도 만들었다. 종이죽 탈바가지의 색은 맑게 먹지가 않았다. 하얀 도화지처럼 어떤 색이든 잘 받아주는 바탕이 못 되고, 어쩐지 탁하고 둔한 색감이라 여러 번 덧칠하고도 마뜩치가 않았다. 삼촌이 투명 락카인지 니스를 뿌리고 발라주는 바람에 비로소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민용기 작가의 색과 질감은 종이죽에 얽힌 어린 날의 기억과, 갈무리하지 못한 채 밤새 빗속을 견딘 라면박스 속 골판지의 시간을 떠오르게 했다. 이 푸르고 찬란한 4월의 신록은 그런 회색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끝에 비로소 우리 곁에 다가온 게 아닐까?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관람객은 조건을 단다. 기사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고. 작가가 작품마다 이름 달지 않으려는 맥락처럼 들렸다. ‘무제’가 아니라 아예 작품명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작가는, 자칫 이 부분에 오해가 있을까 봐서 그런지, 설명이 길다. 
 
    
 
 
시간을 보다  
 

 

 

저는 비전공자로 지명도 있는 전문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성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바람의 언덕 관장과의 오랜 인연으로 벌써 세번째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 <지나갔으나 그리운 것>이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를 하였습니다. 당시 그 제목을 정하였던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전시제목에 의한 작품의 소설성이나 대화성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으로 긴 시간 짬짬이 해온 작업 시점에 개인적 추억을 회고하고자, 그런 독백과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이번 <시간을 보다>에 전시한 작품 또한 처음부터 전시를 목적하거나 의도하고 작업한 것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특정한 테마나 주제가 없어요. 어차피 각각의 작품이 느낌 위주의 작업 결과물들입니다. 각 작품에 대한 느낌과 해석은 보는 이 각자 몫이겠지요. “개인전이라 하여도 그림의 주제가 꼭 일관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게 저의 기본 생각이고요, 같은 맥락으로 보는 이의 자유로운 상상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므로 작품 하나하나에 제목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자칫 유명작가도 아닌 것이 건방지게 “나 원래 그래. 그러니 네 마음대로 봐”라는 식으로 비칠까봐 조심스럽네요.  그런데 혹여 작품마다 제목이 붙어서 보는 이의 상상 자유를 조금이라도 장애를 준다면, 그것이 오히려 잘못 아닌가 하는 게 제 소견입니다.
 
‘바람의 언덕’ 자주 오시는 분들, 또는 우연히 방문하신 분이 제 작품 앞에서 고개 갸우뚱할 수 있을 겁니다. “대부분 작품은 나무가 있으면 잎이 우거진 그림인데, 왜 여기 잎은 한두 개만 붙어 있지?”  “꽃은 있는데 왜 이렇게 흩어져 있을까?”  “집은 있는데 왜 이렇게 허전하지?” 등등으로요. 보면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면, 더 좋습니다. 보는 이가 그 의문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해 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일 테니까요. 작업자 의도와 전혀 다른 스토리로 쓰여질 수 있겠고요~
 
전시를 통하여 작업자로서 이젤에 걸려 있을 당시, 그 당시 한점 한점의 시간을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이렇게 회고하는 작가는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보는” 거 같다. 기자 역시 5년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그때 우리가 이런 이야기까지 나누었나 싶었을 정도로 나름 심층 인터뷰를 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대화 내용은 상당부분 여전하다, 작푸에 제목 없음 등등. 
 
산노리도 여전하다. 25년 전, 에땅이 수변에 수평선을 펼쳤다. 그 뒤를 이어 한참 후에는 이탈리아풍 알바노가 수직선을 세웠고, 지금은 자연문화예술촌이 그 사이를 채우고 있다. 해오름사과밭 밑쪽의 ‘자연문화예술촌’은 이름만큼 자연스레 보이지는 않지만, 갤러리 바람의 언덕 등과 함께 어깨동무하면 이 일대가 천혜의 예술벨트로 성채가 될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민용기의 작품은 자연이다. 인공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활 속의 인공은 이미 체화된 자연이어서다. (민용기 작가와의 첫 인터뷰 : https://nmn.ff.or.kr/17/?idx=7106182&bmode=view)
 
[글] 이진영  [사진] 여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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