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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다'는 뜻을 가진 ‘churn out’과 저널리즘(journalism)의 합성어인 ‘처널리즘(churnalism)’이라는 말이 있다. "왜?"라는 질문이 빠진 채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관행,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따옴표 저널리즘을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 역할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민이 사회적 토론과 결정에 참여하도록 돕고, 열린 사회를 만드는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 언론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장 규모는 작고 여건은 열악한 나머지 상당수 매체가 생존을 위해 특정 수익 구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의와 정치색을 앞세운 분열이 나타나고, 언론이 오히려 사회의 갈등을 고착화하는 역설적 현상까지 빚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20년
놀뫼새마을금고에 의해 2006년 탄생한 놀뫼신문은 지난 20년간 ‘사이’를 좁히는 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 독자와 신문 사이의 심리적 거리뿐 아니라 물리적 거리까지 고려하며, 지역사회 속에서 친한 이웃 같은 언론이 되고자 했다. 정보의 고립, 관계의 고립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소통의 통로를 만들었다. 고립과 격리가 곧 처벌이 되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주변 환경과 물질·에너지·정보를 교환하며 존재를 유지한다. 고립은 생존을 위협하는 상태다. 그래서 단절은 고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논산시와 계룡시 일부 행정 영역에서는 놀뫼신문을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설마 시장이 지시한 것은 아니겠지만, 시장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있는 호위무사가 눈에 가시격인 놀뫼신문을 알아서 열심히 고립계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홍보의 대가를 좁히고, 정보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일수록 그 강도는 더 심각해질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의 고립과 격리의 정책으로 문을 닫을 신문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놀뫼신문이 버텨온 이유는 단순하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는 전제 속에서, 그 한 줌의 진실을 밝히는 언론의 길을 독자와 함께 걸어왔기 때문이다. 빠르게가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다음 시장은 누가 돼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누가 되면 좋겠느냐”는 질문도 아니고, “누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이다. 그냥 웃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치의 향방은 거창한 공약이나 화려한 약속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판가름 난다. ‘사이 간(間)’이 들어가는 단어에는 인간(人間), 그리고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이 있다. 결국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것은 관계다. 수많은 ‘사이’가 모여 세상을 만들어 지기에 그 연결을 촘촘하게 만드는 자가 공동체의 새로운 리더가 되지 않겠는가. 그럼 "누가 될 것 같으냐"의 답을 시사저널 [이한우 시론]의 '주역'에서 인용해 보자. [이한우 시론]은 주역의 64괘 중 62개 괘의 상당수가 ‘어려움’을 다루는 이유는, 조직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국 '위기를 어떻게 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위기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작금의 대다수 국민의힘은 단체장은 어려움이 겹쳐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실도(失道)했기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말 그대로 길을 잃은 것이자 정도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어려움은 없다'며 '주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 어려움은 ‘기인(其人)’이 구제한다며 여기서 기인은 ‘그 사람’이 아니라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난파 직전의 배에서 조타실만 붙들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선원과 승객의 지혜를 모아 배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 사람. 반대자와 시민의 목소리까지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한 동이 술과 두 그릇의 밥을 질그릇에 담고 남쪽 창문을 통해 마음을 결속하면 허물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술은 허심탄회함이고, 질그릇은 신뢰다. 남쪽 창은 가장 밝은 창이다. 공명정대하게, 정정당당하면서 반대자도 만나라는 뜻이다. 위기 탈출은 결국 ‘사이’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 ‘주역’의 지혜다.
살아남을 것인가, 살아남아야 하는가
놀뫼신문은 지난 20년 동안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상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해 왔다. 종이신문이 사라진다고 세상에서 뉴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발행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세상 때문에 우리가 바뀌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때로 무력하다. 그러나 꿈은 분명하다. "무력하지만 압도적인 기사" 길을 잃고 헤맬 때, 두려움에 뒤척일 때 용기를 북돋아주는 마음속에 켜지는 작은 촛불 같은 기사. 그 한 줄의 문장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창간 20년, 지령 800호. 놀뫼신문은 오늘도 ‘사이’를 좁히는 언론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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