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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 그대에게 연민을 느낀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기사입력  2025/06/16 [17:04]   놀뫼신문

 

먼 길을 떠날 때는 전날부터 긴장한다. 차에 기름을 충분히 넣고 계기를 점검해 본다. 점검이래야 자동차가 알려주는 이상 유무 알림판을 살펴보는 것이다. 요즘의 자동차는 스스로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기능이 있다. 나같이 차를 점검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체력을 축적한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운전 중에도 정신이 흐릿해지고 자꾸 눈이 감긴다.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졸음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초행길은 아니어서 길이 낯이 익긴 하지만 비까지 온다고 하니 긴장감은 더 커진다. 목적지의 날씨를 몇 번이나 인터넷으로 알아본다. 비가 거세게 내리지는 않을 모양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 바람이 불어야 뿌리가 깊은지 안다

 

구름이 빨라져서 오후 늦게부터 내린다는 비가 일찍부터 내리려나 걱정했으나 그렇지 않은 것이 하늘의 도우심이라 감사하며 출발했다. 머나먼 길이라도 옆자리의 동행이 누군가에 따라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서둘러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이라 느긋했는데 고속도로가 저속도로가 되고 말았다. 요즘 네비는 참 신통해서 고속도로가 정체되면 다른 길을 알려준다. 낯선 소읍(小邑)을 거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가지 못할 곳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일도 시간의 낭비만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이 가까워지면서 그 길도 점점 속도가 떨어졌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차창에 떨어진다. 길이 열리면 옆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그러다가 길이 막히면 모두가 부동자세이다. 그때 갓길로 쌩하고 달려가는 차가 보인다. 아마 급한 일이 있는데 차가 막혀서 기다릴 수 없나 보다. 전에는 이런 차를 보면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그런데 칠십이 넘어서면서 그래봐야 나만 손해라는 것을 터득했다. 그래서 그런 차량을 볼 때는 , 바쁜 사람이구나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은 차가 오래 지체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좀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야 뿌리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충신과 열녀가 많은 사회는 썩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충신은 성군의 태평성대에는 나오지 않고, 부부가 편안히 사는 세상에서는 열녀가 될 수 없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봐야 누가 충신인가 알 수 있고, 남편이 아내를 잘 보호할 수 없을 때라야 열녀 여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로가 정상적으로 잘 운행되면 누가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인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도로가 막혀 봐야 자기 차례를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사람과 새치기를 해서라도 조금 빨리 가려는 사람이 구분된다.

내가 다른 차를 앞질러서 빨리 가면 뒤에서 기다리는 차들은 그만큼 늦어진다. 물론 단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 많은 차량 모두가 1초씩 늦어지면, 60대를 앞질렀다면 1분이 된다. 물론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다. 60대가 1초씩 늦어지면서 한 차를 1분 먼저 가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차가 정말 그렇게, 경미하지만, 60명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빨리 가야 할 만큼 화급한 일이 있는가에는 의문이다. 대개는 그럴 테지만, 안 그런 차도 있을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민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 분노보다 연민을 느낀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현대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수저를 들기가 쉽지 않다. 가족이지만 생활이 다르니 같은 시간에 모이기도 어렵고, 구태여 그러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교육이 부실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말의 참뜻은 그게 아니다. 밥을 먹는 자녀에게 훈계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예의범절이 훌륭한 가정에서는 어른과 아이가 한 밥상에 서로 조심할 것이다. 어른은 어른의 품위를 지키려 하고, 아이는 아이의 태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밥상머리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평소에 부모가 하는 행동이 아이의 몸과 마음에 배어들기 마련이다.

누군들 자식을 함부로 키우고 싶겠는가. 그러나 잘 키울 만한 여유가 없어 그렇게 키운 것이다. 이렇게 오래 각박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무엇을 얻으면 바르게 쓰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분노하지 않고 연민으로 그 짓을 바라본다.

그래. 너 참, 고생했구나. 그래도 이제 그만, 바르게 했으면 좋겠어.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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