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계룡역 플랫폼에는 엄마 아빠 손을 맞잡은 꼬마 승객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8시 53분에 도착한 기차는 잠시 후 논산역에 정차하였다. 여기서도 30여 명이 탑승하자, 열차 한 동이 가득 찼다. 논산계룡교육지원청의 ‘자녀와 함께 떠나는 인문학 기행’인데, 철도청의 협조로 열차 한 동을 전세 낸 경우다. 호남선 무궁화호 1421 열차는 곧바로 김제를 향하였다.
강경을 넘어 전라도땅에 접어들면서 황등역을 통과하였다. 1972년 나훈아의 국민가요 “고향역”의 배경지다. 해설사의 입에서는 순창 출신 임종수 씨가 이리 남성고로 기차통학할 때의 추억을 되살려 작사 작곡했다는 스토리가 흘러나왔다. 후보지로 거론되지 않았던 익산역(이리역)이 호남선과 전라선의 분기점이 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김제역 내리실 분 준비하세요”라는 안내방송에 묻혀졌다.
수탈현장 김제 지평선과 ‘아리랑’
김제역에서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점심 때까지는 김제를 누비는 드라이브다. 버스 두 대는 집강소로는 원평에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동학혁명의 행정기관(집강소)과 일제수탈 현장인 금광, 노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는 두월노을마을 등을 경유했다. 벽골제에 도착, 밥집에서 쌀밥을 먹은 다음, ‘부모-자녀 소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시된 이 여행에서 가족들은 이산가족이 되었다. 자녀들은 3층전망대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하면서 김제 지평선, 벽골제 이야기를 들었다. 서승 할아버지(전 전주문화원장)의 옛날 이야기는 몇몇 학생의 메모장에 알알 박혀갔다. 역사적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든지 전망대에서 내려온 학생들은 할아버지와 이선림 해설사를 따라 벽골제 수문쪽으로 가로질러갔다.
엄마 아빠 할머니는 여전히 1층 체험학습실에 머물렀다. 엽서쓰기를 마친 후에는 김제역사연구회 측에서 준비한 떡으로 고대문자 찍기를 하였다. 일련의 체험 후 상봉한 가족들은 벽골제 너른 공간에서 1시간 정도 뛰놀며 용두레 돌려보기, 그네타기 등등을 하며 와중에도 모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시 버스는 벽골제 단지 건너편인 아리랑문학관을 건너뛰고, 5분 거리인 아리랑문학마을로 향하였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12권 책을 열어서 만여 평의 대지에 펼쳐놓은 문학마을 본관은 “일제수탈관”이다. 강보금, 고정임 해설사가『아리랑』및 문학마을 전반을 소개해 주었다. 이 동네 한바퀴 돌다보면 일제강점기 때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현장들이 나올 것이라고 리얼하게 예시해줄 때 방청객 입에서는 이구동성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체험 겸비한 교육여행, 가족여행
교육가족 70여 명은 교육청에서 미리 나누어준 자료집을 지닌 채 삼삼오오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원평집강소에서 짚신신기 체험을 못했던 아이들은 문학마을 초입 신발장에서 하얀고무신을 고른다. 초등 저학년은 신발문수가 맞지 않아 약간 헐거운 채로 입장했지만 보부 당당이다.
이번 김제 여행의 테마주는 둘이다. 쌀, 그리고 금! 조정래 작가의 3부작은 태백산맥과 한강, 그리고 아리랑이다. 원작자에게서 아리랑 이야기를 직접화법으로 들어보자. “일제수탈기 36년 소설 아리랑의 역사가 김제에서 시작된 이유는, 김제가 가장 빨리 1902년부터 수탈되기 시작했고 해방될 때까지 수탈이 가장 심해서였죠.” 얼마 전 아리랑 문학관을 찾은 조정래 작가는 논산학생들 올 때 다시 못 올 이유도 덧붙인다. “저는 나이 여든셋 늙어서 아픈 게 아니고요, 내년 3월까지 새 소설 쓰려고 월정사에서 겨울 지내다 보니까 영하 23도에서 감기가 걸려 석 달 동안 꼬박 앓았는데, 오늘은 겨우 기운 차려서 여기에 왔어요....” 조 작가는 ‘글감옥’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서 스스로를 거기에 가두는 은둔칩거형 작가이다.
문학마을 한쪽으로는 하얼빈(哈爾濱) 철도가 달리고 있다. 논산에서 완행열차에 올라탔던 학생들은 자기부상열차로 갈아타고 순간 이동, 눈깜짝할 동안 만주땅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하얼빈 역사나 문학마을 본관의 2층 건물 내부에 펼쳐진 책 콘텐츠들은 하루이틀 여행으로 완독될 분량이 아니다. 유관순 옷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은 선로 위에서 만세 퍼포먼스를 펼친다. 하얼빈역에서 본관으로 돌아와 보니 앞 마당은 윷놀이판이다. 굴렁쇠, 활, 투호 등 전통놀이 공간이나 주재소 등에서 자기네들끼리 주리틀기할 때, 춘향이처럼 칼(枷) 차고 사진 찍을 때도 아이들 얼굴은 온통 희색만면이다.
여행은 대부분 둘러보기 일색이다. 구경 자체로도 의미가 적지는 않지만, 직접 해보는 체험은 오감에 각인되기 마련. 여행지 어느 곳이나 보면 촬영객들로 넘쳐난다. 드넓은 문학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원래 프로그램은 해설사가 요소요소 배치되어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는 것이었는데, 현장에서 그런 의미는 아랑곳이다. 학생들은 어디 뭐가 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OK다. 당대의 옷 꺼내 입고 농기구 등 각종 도구 직접 시험해 보고.... 바가본드를 넘어 호기심천국 예술가 모드다.
자유시간을 한껏 누린 논산계룡 사람들은 박찬희 김제역사연구회장이 챙겨주는 쌀 인심 한아름 품은 채 귀가길 오른다. 쌀과 금의 현장인 김제 땅에서 문학의 향기도 한껏 들이킨 이들은 4시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강경역쯤에서 박양훈 교육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논산계룡 교육가족들은 다함께 책 읽어가는 인문학 분위기의 가정, 나아가 학교와 도시가 되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에서 이번 인문학 여행을 기획해 봤습니다. 우리 청에서는 문예행사, 독서토론, 인문기행 등에도 비중을 두어갈 건데, 오늘 발차한 인문학 기차가 내년에도 후년에도 가열차게 달릴 수 있도록 애정해 주시면 좀더 알차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차 레트로의 종점은 소통역, 그리고 희망
이번 여행에는 교육지원청의 인문영재반 가족과 논산계룡학부모회 가족들이 합류하였다. “영재교육 하면 과학이나 수학, 예능 영재만 떠올리기 십상이죠. 이에 못지않은 영역이 인문 계열이기에 우리 청에서도 논의를 한 결과, 올해 인문영재반을 출범시켰습니다.” 인문학 열차여행을 총괄한 김경태 장학사의 배경 설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기차와의 접맥이 신의 한수로 보인다. 자동차 여행이나 여행사 관광상품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기차 여행은 순위에서 밀리는 감이다. 코레일은 충남 레트로 낭만열차, 감성충만 레트로 논산 핵심투어 등 복고풍(retro) 상품을 내놓는다. 기차 레트로 알맹이들을 살펴보면 숨겨진 보고(寶庫)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는 전라선 춘포역이다. 익산에서 한 정거장 다음인 이곳은, 삼례문화창고와도 머잖다. 폐역, 폐창고를 멋지게 되살려낸 수준급 문화 곳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연산역도 엇비슷하다. 전국에 몇 개 없다는 첨성대(급수탑)까지 갖추고 있지 않은가? 주마가편한다면, 편의성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옛 정취를 한껏 살려내면 어떨까 싶다. 강경 근대화거리도 마찬가진데, 군산과 목포보다 월등 앞섰던 근대화 원조 도시가 지명도에서 밀리는 거 같아 안타깝다.
1910년 공사를 시작한 호남선은 어언 125년의 역사이다. 철마는 그 동안 수많은 부침을 거듭하였다. 두계역은 계룡역으로 승격한 경우이지만, 신도, 광석(개태사), 부황, 채운 등 간이역은 폐역으로 전락하였다. 입영장병 실어나르던 강경선(연무대선)의 선로에는 DMZ처럼 잡초가 무성하다. 기찻길과 기찻길옆 오막살이에는 여러 노래의 가사들처럼 나름 사연들 지천이다.
반월동 미나리꽝 위의 철교도 김홍신의 『인간시장』 주무대 중 하나다. 기차 여행은 어쩜 고구마순이다. 줄기를 끌어올리면 고구마 열매가 주렁주렁이다. 역에서 번져나가는 이야기, 이야기들.... KTX 아닌 무궁화호는 멀게만 느껴졌던 김제를 1시간 안에 주파해 주었다. 요즘은 역 인근에 출발지와 반납지가 달라도 OK인 쏘카, 유카 등 편도(one-way) 렌터카 서비스가 있어서, 굳이 내 차로 움직이지 않아도 원거리 여행이 편리한 세상이다.
이번 기행의 목적 중 하나가 ‘부모-자녀 소통’이다. 부모자식간의 소통 부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시대가 첨단화될수록 심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무리를 다소 수반하더라고 이번 기차여행처럼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가질 때 불통문제의 상당부분 해소되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에서 학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엽서를 한 장씩 썼다. 추천하고 싶은 책과 함께 평소 나누고 싶었던 말을 꼬박꼬박 써서 전한 러브레터다. 소통효과 최고는 편지다. 최상급 여행은 기차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