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청 앞은 지금 이 순간도 조용하지 않다. 누군가는 그곳을 '반대하는 자들의 광장'이라 부르지만, 그곳에 선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논산을 지키고 싶은 시민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는 동안, 이 도시는 그들과 함께 울고 있었다.
지금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더라도 가상 공간에서 의견을 나누고 행동할 수 있는 시점이다. 이제 우리는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목소리는 직접 거리로 나와야만 들을 수 있다. 논산시청 앞 '광장'을 지키는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비인도적 대량살상무기 확산탄공장 반대 논산시민대책위원회> 배용하 위원장, <폭탄공장반대 양촌주민대책위원회> 이광재 위원장을 만나면서 우리는 지금, 이들이 왜 거리에 설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폭탄공장이 아니다?"
배용하·이광재 위원장에 따르면, "2022년 10월 논산 양촌면 주민들은 시장과의 면담에서 '이곳에 들어서는 공장은 폭탄공장이 아니다'라는 백성현 시장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후 알려진 사실은 전혀 달랐다. 해당 시설은 확산탄을 포함한 무기 제조와 관련된 공장이며, 실제로 '폭탄공장'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산시는 여전히 '폭탄공장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백 시장은 논산시의회 시정질문에 참석하고 나오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불순세력', '의원들이 불순분자에게 속았다'고 말하며, 시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불순분자',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논산시민들을 갈라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2025년 초 논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시공무원 월례회에서는 '논산시가 발전되어야 되는데, 시정에 발목 잡는 사람들 때문에 논산시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을 논산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해 달라'고까지 말했다."고 덧붙였다.
갈등은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백성현 논산시장은 무엇때문에 시민들을 갈라치며 낙인의 정치를 펼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지는 또 다른 폭력"
두 위원장에 따르면, '양촌면 발전협의회'라는 단체는 본인도 모르는 회원들을 이름만 올려두고, 위장된 서명을 통해 마치 폭탄공장을 찬성하는 주민이 다수인 것처럼 꾸몄다. 이른바 '조작된 공감'이라는 것이다.
정작 실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공장 유치를 둘러싼 허위 동의와 무관심 속에 주민의 권리는 지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싸움은 단순한 행정 갈등을 넘어서 법정으로까지 번졌다.
폭탄공장측에서 배용하·이광재 위원장을 '업무방해, 허위사실유포' 등으로 고소하였으나 수사단계에서 모두 불송치 되었다.
또한 2024년 설날 마을회관 앞에 게첩되어 있던 현수막을 공무원 3명이 철거하였다. 다른 날도 아닌 설날이었다. 이를 제지하던 마을주민 두 명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되었다.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났지만, 논산시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또 다른 사례는 더욱 충격적이다.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온 전직 공주경찰서장은 이 사안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나섰다가, 시위를 주도하며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1년, 2심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폭탄공장 앞에서 시위를 벌인 양촌면 주민 5명에게 교통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6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간 일일 수 있으나,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을 것이다.
“반대하는 시민도 논산시민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폭탄공장을 반대하는 시민도 논산시민'이라는 자명한 진실이 정치적 프레임과 이익 앞에 묻히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권력의 정당성을, 또 누군가에게는 산업적 경제효율을 의미하는 이 공장은, 그러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과 안전을 뒤흔드는 생존의 문제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는가? 왜 그들의 고통을 ‘시끄러운 소수’의 주장으로 치부하는가?
광장에서 절규하는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단지 반대의 외침이 아니다. 그것은 안전을 바라는 간절한 요청이며, 정의로운 행정을 요구하는 시민의 마지막 권리이다.
배용하 위원장은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는 아직도 매일같이 시청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도망치지 않습니다. 주저앉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그들이 말뚝에 묶인 염소처럼 폭염속에서도 한파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서 있으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 땅이 더 이상 위험과 불공정으로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또 다른 광장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같은 외침을 듣게 될 것이다.
공동체는,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가능한 발전이 있는 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까지 품어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은 권력자의 논리나 편향된 정보가 아니라, 고요히, 그러나 단호히 광장에 서 있는 그들의 침묵 뒤의 절규이다.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