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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 이상한 일이 당연한 일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놀뫼신문 | 기사입력 2025/05/06 [16:03]

[달팽이집] 이상한 일이 당연한 일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놀뫼신문 | 입력 : 2025/05/06 [16:03]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 집 대문간의 감나무에는 삼십 년을 넘게 감이 열리고 있다. 오랫동안 의심해 보지 않았는데 요즘 갑자기 부쩍 의심이 들었다. 참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왜 감나무에는 해마다 감만 열리느냐는 것이다. 그 오랫동안 해마다 감이 열렸지, 한 해도 대추가 열린 적이 없다. 대추나무는 어떤가. 대추나무도 십 년 넘게 대추나무로 불리면서 대추가 열리고 있다. 왜 감나무에는 감만 열리고 대추나무에는 대추만 열리는가. 그것도 한두 해라면 몰라도 삼십 년이 넘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감나무에 대추가 열릴 법도 한데, 그것은 이상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나무이고, 대추나무이기 때문이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고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이 열리는 나무이기에 감나무이고, 대추가 열리는 나무이므로 대추나무이다.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제 마음대로 감이 열렸다 대추가 열렸다 한다면, 혹은 주인이 마음먹는 대로 감과 대추가 열린다면. 그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 나무는 감나무도 아니고 대추나무도 아니다. 감나무는 감이 열려야 하고, 대추나무는 대추가 열려야 한다. 감이 먹고 싶은 사람은 감나무를 심어 감을 따고, 대추를 원하는 사람은 대추나무를 심어야 한다.

 

■ 씨가 다르면 열매가 다르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는 것은 감나무이기 때문이다. 또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리는 것도 대추나무이기 때문이다. 오이 씨를 심으면 오이가 열리고 참외 씨를 심으면 참외가 열린다. 그것은 씨가 다르기 때문이다. 

식물뿐이 아니라 동물도 그 구조가 다르다. 초식동물은 아무리 좋은 고깃덩어리가 있어도 그를 넘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부드러운 풀만을 먹이로 삼는다, 그러나 육식동물은 잘 자란 풀밭을 그저 사냥터로 여길 뿐이다. 날카로운 이빨로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 숨을 끊고, 입에 피를 묻히며 포식한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가을볕 아래서 아내가 갈치를 손질하고 있었다. 아내의 노고로 밥상에 올라 내 식욕을 채워줄 것을 생각하며, 나는 옆에서 아내의 서툰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어디선가 몇 마리의 파리가 날아왔다. 그러더니 뒤를 따라 여러 마리의 파리가 모여들어 아내가 잘라서 버린 갈치 대가리와 가시에 촘촘히 앉았다. 그들은 쫓으면 잠깐 자리를 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위협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고 살기로 대들었다. 대단한 집착이었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벌이 앵앵거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국화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국화의 향기를 따라 많은 벌이 몰려든 것이다. 그런데 이 벌들은 갈치 대가리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은 오직 국화 향기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벌과 파리가 분명하게 달랐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주위에 모인 사람을 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 갈치 대가리처럼 비린내를 풍기는 데에는 파리떼가 몰려들고, 향기를 내뿜는 국화에는 벌이 찾아든다. 

 

■ 사람도 씨가 있다

 

독사는 아무리 많은 물을 마셔도, 꿀을 먹더라도 젖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먹는 족족 독을 만들 뿐이다. 반대로 양은 물 한 모금을 마셔도 젖을 만든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은 젖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이요, 독사는 독을 품어 상대를 해치려고 태어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사람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나는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라고 말한 사람이다. 그는 나와 전혀 달랐다. 곤경에 빠지면 사람 마음이 변하기 마련이지만, 거기서도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그런 구분이 서지 않는 사람과 더 오래 가까이했더라면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사람도 씨가 있어 그는 지금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때 그와 멀어져 더 이상 멀어질 일을 예방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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