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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 「아버지의 해방일지」 참관기
기사입력  2023/05/22 [17:57]   놀뫼신문

북콘서트 「아버지의 해방일지」 참관기

열린도서관에서 만난 확장된 사고들

 

5월 19일, 논산 열린도서관에서 북콘서트가 열렸다. 평상시에는 40명 제한을 두고 3층 다목적실에서 진행하였다. 이번에는 열린도서관 중앙 뒤쪽 계단형 공간인 야외무대로 장소를 옮겼다. 아마 신청 문의가 많아서 인원제한을 푼 특단의 조치였던 거 같은데, 이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 

콘서트는 저녁 7시부터 시작되었다. 관객동원 행사는 대개 금요일을 피하는 경향이다. 연휴 시작이라 인원동원이 여의치 않아서다. 그런데도 이 콘서트는 달랐다. 널럴하게 앉았어도 100여 명이 훌쩍 넘는 관객석이 여유로워 보였다.

여기서 주말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클레멘타인’ 등 4곡이 흘러나왔다. 북콘서트는 9시까지 2시간여 숨 가쁘게 달렸다. 이어진 작가사인회도 장사진을 이루어 이삼십 분은 걸린 거 같다.

  

 

 

 

 

구례에 눌러앉다 보니 쓰게 된 소설 

 

본론인 북콘서트로 되돌아와 보자. 석 달쯤 전 「하쿠타사진관」북 콘서트를  진행했던 임은영 북토크MC가 마이크를 다시 잡아 반가웠다. 형식이나 내용에서 꽤 알차게 진행하는 그녀가 첫 번째로 던진 질문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집필 동기 내지는 계기!

필자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 「자본주의의  적」등 그간 창비에서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소설가이다. 편가르기 좋아하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소위 ‘좌익계열’로 분류될 수도 있겠다.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장례식장에서의 반응은 유별났다. “빨갱이가 죽었는데 문상은 무슨?....” 이러면서 지팡이로 근조화환을 뒤엎는 사달도 벌어졌다. 

작가 정지아는 이러저런 문상객들을 장례식장에서만 보고, 머지 않을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나 다시 볼 줄 알았다고 들려준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머니가 혼자 계시게 되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구례로 내려오게 된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효녀가 되고자 해서다.

어머니와 단둘이서 오붓하게 생활하고자 하는 계획은 첫날부터 빗나갔다. 구례라는 곳은 애초부터 사적 공간이니 사생활 같은 게 보장돼 있지 않는 소읍이요, 그야말로 한동네 한통속이었기 때문이다.  “어이, 있는가?” 소리와 함께 이미 문 열고 들어와 있는 이웃들, 길 가다가 어느 할아버지 손에 붙잡혔는데 “뉘집 딸 아녀? 맞구먼? 이리 좀 들어와봐!” 아버지가 즐겨먹었다는 회를 시켜서 난감해하자 “그간 한번도 안 먹어봐서 그런 거니께...” 성의 표시로 억지로 먹다가 사흘간 고생고생하고...

더 이상한 것은 어머니의 식성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본인 식성도 모른 채 가장인 아버지와 가족의 입맛에 자신의 식성을 맞추어온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다. 나이가 든 인고의 여인은 이제 종합병원이 되어 있었다.  

효녀가 되고자 낙향한 딸은 엄마가 본래 본성을 되찾도록 거들었다. 그래서일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나 이제 허리가 안 아프다야!”  “흐미, 오늘은 눈이 훤하게 보이네요이~” 어머니의 회춘(?) 비결을 묻는 MC에게 작가는 “뒤늦게라도 본인 식성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당신 입맛대로 먹게 된 결과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서 작가는 머잖아 복귀하려던 서울살이 대신 구례읍민으로서 정착 과정을 한걸음씩 밟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봤던 분들을 일상에서 자주 보게 되었고, 그분들에게서 어려서 듣던 이야기들을 이어 듣게 되면서, 그것들이 이번 책의 줄거리가 되었다고 들려준다.

 

 

30만부 돌파한 저력은?

 

작가가 원래 생각한 책 제목은 “이웃집 혁명전사” 였단다. “그래 가지고서야 책이 몇 권이나 팔리겠어요?” 비아냥거림과 함께 마케팅부에서 제시한 제목은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미 “나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이 만천하에 퍼져 있는 마당에 작가의 자존심도 있어서 당장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곰곰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명실상부 그렇게 딱 맞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조건부 승낙을 했다고. “어디 가서 얘기할 때 책 제목은 내가 지은 게 아니라고 빨뺌할 겁니다!” 제목 덕인지 3만부만 팔려도 대박이다 싶었는데 최근까지 30만부 돌파했다고 뿌듯해한다.

초창기에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임은영 MC는 SNS에 등장 인물들의 특징을 자세히 올렸단다. 그 글을 본 어느 기관에서 ‘저자 대신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다. 

북콘서트 초반은 주로 저자와 MC의 2인 토크로 진행되었다. 책 수다라기보다, 구례에서 평범하면서도 그 동네만의 살가운 풍속도가 구성지게 펼쳐졌다. 허접해 보이는 이야기만으로도 일상이, 한 편의 소설이 되어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보도연맹 사건이 거론되었다. 6·25 당시 이승만은 전국 경찰서에 공문을 보냈다. “현재 수감돼 있는 좌익 사범 전원을 당장, 무조건 사살하라!” 이렇게 끔찍한 일은,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당시 구례에도 700여 명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경찰서장이 그들 앞에 공문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못한다. 대신 혹 너희들 세상이 되면, 그때 너희는 경찰가족들을 죽이지 말아다오.”  이렇게 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도연맹 비극을 겪지 않은 곳이 구례라고 밝힌다. 이후로도 우리 민족사의 비극은 여전히 이어져온다. 정지아라는 이름도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한 부모가 두 산 이름을 모아 지어준 이름이다. 이러한 빨치산의 딸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 이야기도 좌충우돌 펼쳐진다. 

 

 

 

 

  

군사도시에서 쏟아지는 기탄없는 발언들

 

MC는 둘만의 이야기를 중단하고 마이크를 객석으로 넘긴다. 물 만난 고기처럼 이곳저곳에서 손이 올라간다. 작가에게 던지는 질문도 있지만, 차제에 본인 자작시를 낭송하는 이도 있다. 각본대로 돼주지 않는 질문 시간대는 이 북콘서트의 주체가 작가라기보다 시민, 독자임을 환기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 대부분 책을 읽어본 듯하였고, 기탄없는 발언에 이념과 사상의 자유는 기본으로 깔려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잠깐, 여기는 어디인가? 연무대훈련소 논산이다. 군사도시 논산은 육군장병을 자처하며, 수많은 정책을 군수산업에 초점 맞추어 추진 중이다. 끔찍한 살상무기 공장이 세워졌지만 이를 홍보하는 기사는 넘쳐나도,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기사는 거의 안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제2의 싸드가 들어와도 반대가 적을 거 같은 육군병장 논산에 때 아닌 ‘해방’ 군중들이 술렁인다. 반공서적을 펴낸 이도 자기 집안사를 털어놓는다. 공주에서도 넘어오고, 주말 겸하여 서울서 내려온 독서광도 손을 든다. 각자 자기 나름의 포용력이 있어서인지, 새장을 벗어난 새들처럼 발언이나 이념 제약에서 무제한 자유로워 보였다. 

작가 정지아도 빨치산의 딸로 태어나 누구보다 아버지와 그 주변사람들의 언행(言行)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자랐을 터! 아버지는 물론 그 친구, 동지들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움터왔기에, 그녀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가족사를 현대사로 줄기차게 기록해 왔을 것이다. 까칠하기만 했던 도시녀(city girl)가 구례에 내려와 진정한 사람살이를 배웠다는 그녀는.... “사람 됐다”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한결 더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다.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숙제로 이념간의 갈등을 손꼽는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한 치의 양보는커녕 일전불사 극단이라도 치닫을 기세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무조건 달려가는 그들의 실상은 무엇일까?  어쩜 극단주의자들은 조금도 포용할 여유가 없기에, 그래서 스스로의 한계를 극단 행동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인회에서의 속삭임과 폰 품앗이

 

“작가와 사회자의 가벼우면서도 진중한 대담들,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독자들의 자유로운 분위기, 행사 마지막에 작가님의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제 마음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허상의 자기표현이 일상화된 요즘, 낯설지만 시골의 진솔한 관계이야기가 위안과 공감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이야기 속 인물, 사건을 짜는 소설가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 존경합니다^^” 한 참석자의 고백이다.    

장사진을 이루는 사인회에서 작가에게 조단조단 건네는 말들은 일종의 고해성사처럼도 들렸다. 대기열에서 자기 폰을 뒷 사람에게 건네주며 작가와의 인증샷을 요청하는 폰 릴레이는 현대판 두레, 일종의 품앗이로도 보였다. 

뒷풀이가 이어졌다면 좋았으련만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콜하려 하였다. 내가 연속 인증샷을 할 때 그런 나를 눈여겨 본 군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타시죠! 훈련 마치고나서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 반바집니다.” 그날 동승한 우리의 목적지는 민관군(民官軍) 합일의 논산평화시 대동(大同)마을이었다.  

 

- 이진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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