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사람들| 부자식품 그리고 사위네집
우리집 잘되는 게, 시장전체 부자되게 하는 길
“부자 되세요” 이제는 익숙해진 인사말이다. 부자(富者)를 입에 달고 살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가능하다. 넘쳐보낼 수도 있다.
몇 달 전 화지시장 주차장에 현수막이 하나 걸렸다. “부자식품 사위네집” 개업을 알리는 팡파레다. 9구역에서 부자가 된 부자식품이, 이제는 사위네를 제금내 주었다. 1-2구역은 시장 한복판 번화가라서 가게자리가 잘 나오지 않는데, 마침 하나가 나오면서 신속하게 계약을 한 경우다.
사위네집 찾는 손님들 하는 이야기 “장인이 부자 됐으니까 이제는 사위도 부자 돼야지!” 좋은 의미에서 부익부(富益富)는 이런 때 쓰라는 말 같기도 하다. 부자식품 #한중금홍어회는 이제 전국 브랜드다. 한중금 여사가 30여 년 만들어온 홍어회는 대부분 택배로 나간다. 현재 컴퓨터에 들어 있는 고객 명단은 5만여 명선이고, 토~일 화지시장 매장을 찾는 손님 8~9할이 대전이나 익산 등지에서 오는 외지인이다.
여행 겸 타지 시장을 찾은 손님들은 주변의 다른 가게에도 들른다. 전통시장활성화의 리얼한 현장이다. 시장에 이런 견인차가 몇 대만 있어도 화지시장은 전국 명소로 급부상할 조짐이다. 한편 제금난 부자식품사위네는 시내 배달쪽으로 주력한다. 맛은 한집인데, 도착지 주행거리는 다르다.
“맛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영업비밀 개념 없이 훅 들어온 기자의 질문에, 한중금 홍어회 주인공은 그릇을 하나 들고서 나온다. “홍어에 보면 큰 뼈가 있죠, 우리는 이거부터 발라내요. 필요한 손님에게 나눠주고요.” 이 비결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됐지만, 따라하는 업체가 많은 거 같지는 않다. 무게나 부피에, 즉 원가가 휘청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공개하는 맛의 비결보다 기자의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은 바깥주인 주상화 대표의 깨자랑이다. “아버지가, 이집 홍어회 없으면 식사를 못하시겠대요ㅜ” 그래 몇몇 단골은 요양원 부모님 찾아뵙는 날을 한 주 단위로 고정하였다. 반찬을 제때제때 공수하자니 일주일을 넘겨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매스콤의 위력 뒤에는
“가장 먼데서 온 손님은요?” 기자는 질문해놓고 제주도를 예상했으나, 최북단 강원도 고성이란 답이 돌아온다. “새벽 6시부터 기다렸다는 거예요, 우리 가게가 열리기를.” 여행 코스 중 TV에서 본 논산을 포함시킨 것이다. 요즘은 탑정호 출렁다리 개장 소식에 손님이 좀더 는 거 같다는 시류도 전달한다.
매스콤의 위력은 여전하다. 부자식품은 대전권에서만 방송을 탔는데 2019년에는 “서민갑부”에서 연락이 왔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결론은 No! 1남 3녀 중 출가한 딸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리어카시절 이야기 나오면 시집 보기에 난감하다”는 게 주 이유였다. 다음해 KBS 전국방송 “생생정보”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OK이지만 조건부였다. 초창기 얘기는 빼는 걸로.....
그렇게 해서 이틀간 연속 짬짬 촬영하였고 15분 방송으로 해서 나갔다. 작년 크리스마스때 전국 전파를 탔는데, 부메랑처럼 성탄선물 폭탄꾸러미가 되어서 돌아왔다. 하루 1천통 이상의 전화 주문에 나중에는 양해를 구해야 했다. “한 달 후로 미뤄도 되겠는지요?” 1주일간 2억 매출 올리는 동안 온 식구가 하루 두 시간 이상 잘 수 없는 나날이었다. 사위네는 젊으니까 힘을 더 써야 했다. 당시도 지금처럼 코로나 한복판이었지만, 잠시 소강상태였던 시점이다.
부자식품에서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방송 전에도, 후에도 심각하지가 않다. 택배판매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전국적인 경기침체 상황을 감안하면 부자식품 홍어회는 중독성을 유발하는 양념이나 손맛, 그 무엇이 비장되어 있어선가 보다.
이제 곧 추석이다. 평소에는 갓 시집온 며느리도 풀타임인데, 명절 앞두고 보름쯤은 알바 너댓 명이 투입된다. 기자가 찾은 시간은 택배 없다는 토요일, 오후 4시쯤이었다. 무슨 얘기 끝에 “오늘 취재 시간 잘 맞춰왔어요. 다들 점심도 못 먹었는데...” 돈 버는 재미로 즐거운 비명도 좋지만 때론 끼니(?)도 거르는 걸 보니, 부자라서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고, 하늘이 내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리어카 시절을 오늘에 되살려
“TV에서 밝히기 어려웠던 얘기, 이제는 들려주실 만해요?” 다른 질문에는 거침 없고 앗쌀한 즉답이었지만, 이 문답은 후반부에나 이루어졌다. 부여 여자 한중금은 전자회사에 다니는 강원도 삼척 남자 주상화와 눈이 맞는다. 신랑이 사업하겠다면서 전자부품 제조공장을 차린다. 5년 후 부도를 맞자 새댁 한중금은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생활이 여의치 않자 낙향을 결심하는데 부여보다는 논산이 크다고 보아 화지시장쪽을 둘러본다. 리어카를 사서 젊은 아내는 생선을 팔고, 남편은 ‘외장’을 나간다. 5일장 장돌배기다. 그러니까 이게 42년쯤 전 일이다. 10년쯤 되어서 점포를 하나 마련한다. “부흥냉동” 생선가게를 내면서 곁다리로 홍어회도 만들어 매대에 내놓았다.
30여 년이 흘렀고 시장에도 상인회가 결성되었다. 부회장을 하던 남편이 어느날 회장이 되었고, 장사에 소홀하면서 월급은커녕 자부담인지 뭔지 몇 천을 빼가는 사달이 벌어졌다. 시장을 떠나야 구정나겠다고 생각한 아내는 건양대쪽에 ‘아이리스’라는 간판을 걸고 식당을 냈다. 5년 정도 하다가 구관이 명관이라고, 현재 9구역 25평 큰 터로 되돌아왔다. 부자식당을 내면서 샵인샵처럼 식당 한 켠에 홍어회 반찬코너를 내 겸업하였다. 홍어회는 건양대 시절에도 줄기차게 이어왔고, 돌아온 시장에서도 한중금표 홍어회의 명성은 이내 회복되었다. 반찬코너 매대는 크지 않았지만 식당매출 못지않았다.
코로나가 쓰나미처럼 몰려오자 제일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식당이다. 2년 전 식당문은 닫고, 반찬가게문 하나만 냈다. 반찬 메뉴의 1등공신은 단연 홍어회고, 2등은 돼지족발맛 편육이다. 사람으로는 1등공신은 한중금 여사고 사위 포함 4명이 4륜마차의 바퀴가 되어서 부지런히 돌아갔다. 얼마 전 영화배우 못지않은 훈남아들 주현수가 장가 들어서 대표 명의도 넘겨주었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는 신혼여행 돌아오자마자 현장에 투입되었다. 71세 시아버지에게 “며늘아가”라는 호칭은 없다. “새린아” “네, 아빠”
이런 호칭은 사위한테도 동일하다. “영웅이 자네” 하며 7년간 동고동락하던 사위를 이제는 제 살림 내줄 때다. 마침 목 좋은 곳에 자리가 나서 분가를 서둘렀다. 장인어른 입장에서는 본인 장사보다 사위네가 눈에 밟힌다. 두 딸은 서울로 시집가 잘 사는 가정주부인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셋째딸은 맞벌이다. 그 딸은 또 세 딸을 낳아 할아버지 할머니의 낙을 더해주지만, 현실은 현실이기에.
“사위네는 별도로 취재할 거죠?” 가족경영을 염두에 두고 동시취재를 구상했던 기자는 난감하다. 본점에서 이야기를 마친 후 사위네를 들렀다. 쪽파 다듬느라 여념이 없는 사위 길영웅 대표가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천금 무게다. “이번이 네 번째고요, 대전에서 식당하고 있는데 처갓집에서 내려오라 해서 함께 했던 거예요.” 토탈 17년 경력이란다. 현재 나이를 빼보니 17살부터 현장에 뛰어들었고 그래서 조리라면 어떤 거라도 자신 있다는 포스다. “책임감이 있어요.” 뭐가 좋아 결혼했는지 셋째딸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37종 반찬은 청출어람, 장모님 손맛 못지않다. 12평 가게를 이제는 둘이서만 감당해야 하니, 부부의 손길은 쪽파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사위를 챙기는 장인에 비해 장모님의 시야는 화지시장 전체 광폭이다. “우리가 잘 되든 누가 더 잘 되든, 화지시장에서 누가 뭐 잘한다는 소문이 퍼져 원근 각지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대기만을 바래요.”
이러면서 홍어회와 돼지편육 한 사라씩 바리바리다. 얼음봉지까지 챙기는 세심함을 보면서 기자의 질문은 내리줄창이다. “간판을 왜 부자라고 걸었어요?” “아, 시골 어르신들 부르기에 편하고 기억하기 좋잖아요!” 단순 소박한 발상의 중심은, 나보다 이웃이다. 고객 중심의 장사를 하다 보니 어느덧 부자가 되어서, 이제는 맞은편 3층건물주도 되었다. 임대료 20% 할인 착한임대인도 돼보고, 성금 걷을 때면 눈 딱 감고 금일봉도 할 만큼 되었다.
그러나 장사가 좀 잘 된다고 해서 해이해지거나 흐트러지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리어카 시절 몸에 배인 부지런함도 있지만 반세기 함께 해온 시장사람들이 늘 곁에 있어서다. “나 혼자만 잘 살면 뭐혀?” 부자(富者)의 ‘부’자는 부지런할 부요, 나눌 분(分)의 초성이지 않을까 싶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