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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인생박물관] 신상두 계룡더샵아파트 노인회 총무
기사입력  2021/02/08 [13:03]   놀뫼신문

|계룡인생박물관| 신상두 계룡더샵아파트 노인회 총무

“지역봉사하면서도, 누릴 건 다 누려요”

 

 

신상두(申相斗) 계룡더샵아파트 노인회 총무는 올해 75세이다. 그의 고향은 충남 연기군(지금의 세종시) 금남면 감성리이다. 그의 집안은 그곳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양반가였다. 그의 부친은 3형제 중 둘째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형 대신 보국대(징용)에 들어가 12년 간 동남아 일대에서 노역을 했다. 당신께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기보다는, 아마 집안의 장자를 사지로 보낼 수 없었기에 둘째를 대신 보내기로 한 부모님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으리라. 그의 부친은 그런 분이셨다.

그의 부친이 징용에 가기 전 서둘러 혼인을 하였는데, 그때 그의 모친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그의 모친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며 무려 12년 동안 시집살이를 했다. 그런 깊고 고운 심성을 가지신 부친과 모친 사이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군대처럼 엄격했던 자녀교육,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군인의 꿈을 품고 있었다. 가정형편상 학업이 중단되기도 했고 또 사관학교도 갈 수 없었으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970년도에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였고, 그 이듬해 제3사관학교에 당당히 입교하게 된다. 그렇게 장교로 임관한 그는 부관 병과로 인사업무를 보며 전후방 각지에서 근무하다 1999년 중령으로 전역하게 된다.

그는 1976년 강원도 양구에서 대위로 복무할 때 결혼하였다. 아내 양영회(梁英會, 69세) 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4년 말 그의 하숙집에서였다. 워낙 성실하고 반듯한 그를 좋게 본 하숙집 주인이 그 집에 왕래하던 지인의 딸을 소개하여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하였다. 그때로서는 흔치 않은 연애결혼을 한 셈이다.

두 아들을 낳았다. 그는 두 아들을 아주 엄하게 키웠다. 지금 손주들을 보면 너무 귀엽고 예뻐서 다정다감하게 대해 주는데, 왜 그때 두 아들에게는 그리도 엄격하게 대했을까 후회스럽단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두 아들도 과거의 자신의 육아 방법대로 손주들을 엄하게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자신이 그렇게 했던 것을 보고 배워 그러리라. 아들들에게 “그러지 마라. 그렇게까지 해야 될 필요가 있겠느냐?”며 말린단다. 다시 두 아들을 키우게 된다면 엄한 아버지가 아니라 다정다감한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되뇌인다. 직장에 다니는 두 아들은 결혼하여 모두 4명의 손자와 손녀를 두었다. 그가 지난 고희 때에는 두 아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손주들이 위대한 아버지 상을 주었는데, 평생 받은 숱한 상들 중 가장 값진 상이었다고 뿌듯해한다.

 

 

 

 

 

전역후 기술자격증으로 인생제2막

 

밀레니엄 세대를 앞둔 1999년도에 그는 30여 년에 걸친 군생활을 마감하고 전역하였다. 계룡시청의 여권 발급 업무를 하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런 생활을 얼마간 하면서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여권이란 것이, 대부분 해외여행 때문에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굳이 이런 일을 내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그만두었다.

대신 직업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30년 군생활 동안 인사행정 업무를 주로 봐왔기 때문에 그 외의 기술적인 일은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현재 4개의 자격증을 획득하였는데, 전기기능사, 전기산업기능사, 전기기기기능사, 그리고 소방2급취급자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격을 가지고 대전에 있는 신협중앙회에 취업하였다.

그동안 군에서는 간부의 입장에서 지시와 감독만 하다가 막상 지시를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시를 하는 입장과 지시를 받는 입장을 서로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임하면 원만한 상하관계가 될 것인데, 군대 있을 때는 그것을 몰랐단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일하였는데 ‘그 기간은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봉사, 투병 와중에도 삶의 기쁨들 챙겨

 

그는 계룡시에서 여러 지역활동을 한 결과, 자원봉사센터에서 우수자원봉사자로 선정되었다. 농업대학(3기), 국립공원 시민대학(7기)을 수료하였고 또한 시에서 주관하던 생태학습학교를 나와 이를 통한 동아리활동 및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해오고 있다.

이러한 지역 봉사활동과 더불어 그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병행함으로써 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그가 가장 즐기는 취미는 역시 여행이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다. 크루즈여행, 터키가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고 그는 추억한다. 작년부터 코로나19 세계 대유행으로 지금은 여행을 못 가는 실정이다.

건강을 위하여 가족과 함께 파크골프를 즐긴다. 게이트볼과 테니스도 가끔씩 즐기는 중이다. 요즘에는 걷기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동안 즐겨오던 술은 3년 전 후두암으로 끊었다.

3년 전 어느 날, 바닷가에 하루 나들이를 하고 온 이후에 목소리가 쉬어서 감기인줄 알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는데, 급기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더란다. 급히 충남대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수술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조직을 배양해보니 후두암! 그 후 약 30여 차례의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고 지금은 예후를 관리하는 중이다. 지금 목소리는 수술 후 변한 목소리라고 알려준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생도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전역 후부터이며 현재는 계룡우리교회에서 안수집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신앙생활이 좋은 것은 “항상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라는 점이다.

“나같이 평범하고 특별할 게 하나 없는 사람을 인터뷰할 게 뭐가 있겠냐?”고 말을 건네는 그는 “어제 폭설이 내려서 아파트 내 제설작업을 오전 내내 하고 나오늘 길”이라고 들려준다. 재난방재 자원봉사처럼, 이제 봉사하는 삶은 그에겐 일상이다. 그런 그가 우리 계룡시 시민으로 함께 살고 있다니 든든 듬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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