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고
광고
논산시계룡시백제권 뉴스사회종합교육·문화농업·단체오피니언·사람들기획·특집정치종교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편집  2020.07.11 [14:09]
> 기획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2020충남지역언론지원사업] 논산 회맹(會盟)과 일부 유생참여
동학농민혁명, 충남에서의 발자취를 따라서 - 2
기사입력  2020/05/28 [18:27]   놀뫼신문

 

[2020충남지역언론지원사업-2] 동학농민혁명, 충남에서의 발자취를 따라서

논산 회맹(會盟)과 일부 유생참여

 

[충청의 동학, 논산에서 함성을 토하다]

① 충남지역 동학농민혁명 기인에 대한 서론

② 논산회맹(논산의 집결과 결전) 

③ 충청1 북부권- 천안상황(세성산 전투 중심으로)

④ 충청2 공주 전투(이인, 우금치와 세종 첫마을 벌-대교리

⑤ 충청3 서부 내포권(당진-승전목/ 예산-관작리, 내포 등)

⑥ 논산 황화산성, 절며 돌아가는 길(금구로, 대둔산으로)

⑦ 동학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나?(“싸우러 갔다가 왜 팔목을 놓고 오셨소”)

⑧ 논산 - 농민회의 남접북접 만나는 행사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6주년이다. 혁명의 기포지 정읍에서는 5월 9일 농민군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1994년 100주년을 기념해 위령탑을 만들었고, 그 이후 황토현 전승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여 높은 뜻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우금티기념사업회, 122억 사업 펼쳐

 

100주년을 기념하여 결집한 곳 중의 한 곳이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이다. 충남 공주시에서도 지난 11일 우금티전적지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열렸다. 동학혁명기념일은 5월 11일로 제정되었는데, 그 이후 두 번째 행사였다. 기념식은 길놀이 공연과 추모 시낭송, 헌화 등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기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 확산을 고려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됐다. 

신경미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금은 동학정신이 꿈꾸던 신분 없는 세상이 됐지만 또 다른 차별들이 존재한다. 동학도인들이 꿈꾸던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외쳤다. 한편 이날 공주시는 동학농민운동 4대 전적 중 한 곳인 우금티전적에 대해 총 122억 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방문자센터 건립과 광장 조성, 기념관 건립 등 종합정비사업을 추진한다고 브리핑하였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는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계기로 공주 지역의 활동가들과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동학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학생·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역사 교실, 사적지 답사, 예술공연, 추모제례, 학술편찬사업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18년 공주시 지원조례 및 2020년 가을 건립 예정인 방문자센터를 시작으로 공주는 물론 전국의 많은 이들이 찾아와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사적지로 꾸며가고 있다. 

“그간 동학농민혁명은 고부 전봉준을 축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340개 군현 중 170개 군현에서 봉기하였고, 인구 1/3이 참가하였던 전국적 규모의 항쟁이었습니다. 우금티기념사업회는 올해 공주지역 학교들을 찾아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학생들에게 알리는 ‘동학학교’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해설사 양성, 소개책자 발간 등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김기찬 우금티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의 2020사업계획 설명이다. 

 

▲ ​공주우금티 동학농민혁명 기념식     ©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창립준비

 

이런 가운데 논산지역 추승 상황은 어떠한가? 논산에서 동학은 한 세기 하고도 사반세기나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부터 농민회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요즘은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창립식을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지난 5월 9일에는 창립준비회의 1차모임을 논산농민회사무실에서 가졌다. 올해 사업계획 검토하는 자리에서 6월 25일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창립식’을 실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14일에 다시 창립식 준비모임(2차)을 가졌다. 3차 준비모임은 28일 목요일 저녁 7시 연산순대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2차 모임 결정 사항 중 하나는, 6월 25일 창립식 때 맨 처음에 띄우는 경과보고 영상을 2017년 11월 11일 걸었던 평화발자국으로 결정하였다. 그때 주제가 “논산의 갑오농민전쟁 발자취를 찾아서”여서이다. 당시 발자취는 황화대~황산성~연산아문이었다. “평통사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약자로 1994년 6월에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나선 시민단체입니다. 한반도비핵화와 평화협정체결로 우리 겨레의 평화공존을 위해 활동을 전개하던 중 논산계룡지부는 그 날 동학길을 걸었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외세에 의해 왜곡되고 방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동학이 걸었던 기치 ‘반외세’와 맥을 같이 한다고 봐섭니다.”  변해숙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논산계룡준비모임‘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126년이 지난 현재, 논산에서 동학혁명 자료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 시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친이 동학교도로서 동학교리 때문에 논산으로 내려온 경우라면서 선친의 동학경전은 물론 20년 전 건국대 신복룡 교수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전봉준은 동학교도가 아니다’란 글, 교육연구회 송진석 저서 ‘전봉준’에 대한 메모 등을 준비해놓고 있다고 전해왔다. 

작은 불씨지만 논산동학의 실마리를 풀 단초들이 하나둘 쌓여가는 분위기다. 논산과 공주는 물론 충남 전체에 퍼져 있던 동학의 물결을 순서에 따라 계속 좇기로 하면서, 지난 호 끊어진 부분에 접맥할 시간이다. 본지는 4월 29일자 “충청의 동학, 논산에서 함성을 토하다” 그 첫 번째로 <충남지역 동학농민혁명 기인에 대한 서론>을 펼쳐보였다. 이번호는 두 번째로 논산의 집결과 결전을 내용으로 하는 ‘논산회맹’이다. 이번에도 지난 호에 이어 충남향토사학자인 이상호와 함께 그 시대, 그 함성을 따라가 본다. 논산디지털 일부 내용을 개작하면서 시간 순 여행을 떠나간다. 

 

▲ 동학유적지인 논산의 황화산성 토축     ©

 

▲ 등화동 주민의 황화산정 봉화제     ©

 

논산에 남접군과 북접 동학농민군 주본영 설치

 

조선왕조 후기, 밖으로는 외국 세력의 침투에 따라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게 되었고, 안으로는 농민의 사회의식이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각종 민란까지 발생하였다. 16~17세기에 임술(壬戌, 1562) 임꺽정, 정축(丁丑, 1697) 장길산 등의 해방운동(解放運動)이 농민 계층의 각성으로 재연됐고, 동학교도 이필제의 발심에 의한 민란도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농민 계층 속에서도 외국의 경제적 침탈 행위를 물리치고 하급관리의 수탈에 맞서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과 경과

 

동학은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평등세상’ 교리를 확장하였다. 단순한 종교적 신앙의 영역을 넘어 농민들의 개혁 욕구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 그리하여 사회 개혁의 요구와 외국 세력의 배척을 주도하는 정치적 영향력도 급성장하여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당시 충청 논산 지역에서는 타 지역과는 달리 농민군들의 봉기에 이은 전쟁의 수행과 아울러서, 유림 세력과도 연합하는 복합적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처음 기포가 교조 최제우의 신원(伸寃)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민란과 결합하게 되면서 점차 정치운동으로까지 비화하였다. 충청 논산 지역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논산의 봉기가 지정학적으로 전국 봉기의 축에 서게 되었다. 타 지역 농민군의 분노를 받아들이고 남‧북접의 회맹(會盟)을 통해 어떻게 연계되고 응축하여 폭발적 함성을 만들어 냈는지 살펴보는 일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1893년 노성민란으로 일찍 봉기하였던 논산 지역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에는 농민봉기가 본격 격발되지는 않았다. 전주 화약 이후 전라도 지역에서 집강소가 설치되고 자치권이 확보된 이후부터 논산 지역에서도 동학농민군을 중심으로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3월 20일] 제1차 농민전쟁은 1894년 3월 20일 전라도 무장에서 ‘포고문’을 발포하면서 시작되었다. ‘포고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었지만, 농민군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금산 지역의 남접은 무장성 기포보다 빠른 3월 8일 무장 봉기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월 6~8일] 연산의 동학농민군 100여명이 연산관아의 업무를 장악하여 무기고를 열고 총과 화약, 군마 등을 탈취하여 지방군과의 군비적 우위를 점했다. 

 

[8월 이후] 이인(利仁)의 동학 도집강(都執綱) 김창순(金昌順)이 노성지역 동학농민군들과 합세하여 노성 관아의 무기창고와 창고를 열어 군기와 식량을 확보하였다. 이 시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농민군들은 연원제에 근거하여 소집단 별동대 규모의 조직이 대부분이었다. 6~7명의 접주가 서로 연통하는 조직이었다. 당시 연산의 접주로는 박영채(朴泳采), 은진의 접주로는 염상원(廉相元)이 활약하였다.

 

[9월 18일] 청산에서 동학교단의 ‘기포령(起包令)’ 발포는 동학농민전쟁의 발화점이 되었다. 이후 농학농민군이 일시적 점거했거나 북접 교단이 남접과 합류하려 한 호서회맹은 보은지역 대도소를 공주로 전진 배치하여 동학농민전쟁을 치러내려는 계획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한다. 그래야 공주 우금치 전투의 집요함이 설명될 수 있어서다. 

전남 장성의 전투에서 농민군이 보여준 전투지연과 임기응변은 화력의 열세로 농민군이 패배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수세적 대응 후에 급속하고도 비장한 반격과 희생이 따를 것이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남접지도부가 회피전술을 폈는데, 이런 측면은 현대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논산회맹

 

논산 지역의 동학농민군 활동은 제2차 동학농민전쟁과 더불어 개최된 논산회맹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전봉준으로 대표되는 남접군과, 보은에서 출발한  손병희의 북접농민군의 대표부가 연합하여 논산에 동학농민군 주본영을 설치하였다. 이로써 논산 지역은 제2차 동학농민혁명기의 동학농민군 주력군이 주둔하는 전략기지로 변모하여 보급기지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공주감영을 점령하여 호서도회를 개최하고 법헌(최시형)이 머무는 대도소임을 선포하고,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겨울을 나고 점차 중앙정부와의 협상에 임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논지(論旨)의 중심선상에 논산의 황화산 지휘부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중심기지가 황화산성(봉화산) 황현(黃峴) 고개 일대, 안기(安基)에 자리 잡은 일이다.

 

[10월 12~16일] 동학농민군의 절정기에 논산동학의 이름을 드높이려면 남‧북접 농민군이 함께 한 논산대회(10월 12~16일)를 조명하여야 한다. 논산 대회의 기세로 공주 유회출신 이유상(李裕尙), 여산부사(礪山府使) 김원식(金元植) 등을 항일연대의 동학에 참여시켜 공주성 함락 후 ‘호서도회 개최계획’에 합의하고 실천했다는 점에 논산동학사 서술의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논산회합에는 극소수였지만 이전에 동학농민군에게 적대적이던 유회군도 참가하였다. 이 중 공주 유생 이유상, 여산부사 김원식 등은 회합 전에는 동학농민군과 대척점에 서서 활동하였으나 새로운 길에는 동참하게 되었다. 북접 옥천포의 농민군 주력은 손병희가 인솔하여 1만여 명이 대오를 갖추었고, 남접농민군 중 전봉준의 직할 부대 1만여 명은 다른 후속부대와 함께 같은 달 21일경 논산을 출발하였다. 그리고 노성과 공주의 경천점에 군영을 전진 배치한 다음 3路로 나누어 공주로 진격하였다.

 

[11월 8~11일] 제2차 동학농민전쟁 중 공주로 진격한 동학농민군은 11월 8일에서 11일까지 4일간 생사의 우금치공방전을 치러내야 했다. 수차례의 공세 속에서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방어를 뚫지 못하고 끝내 패배하고 말았다. 급격한 후퇴로 사상자를 많이 내며 노성까지 밀린 농민군은 진영을 수습하였다. 

 

[11월 12일] 다음 날인 12일 동학농민군은 동도창의소(東徒倡義所)의 이름으로 관군과 이교(吏校) 및 백성들에게 척왜(斥倭)와 척화(斥化, 반개화당)를 내세우는 포고문의 발표와 함께 동참을 호소하여 기세를 올렸다. 

 

[11월 14일] 14일경 노성의 동학농민군은 모리오마사이치(森尾雅一)가 이끄는 일본군과 연합한 관군의 공격을 받고 논산 대촌(大村)의 원봉(圓峯)으로 진을 옮겼다. 이때 논산  집결지에 대기하던 후속농민군은 공주 입성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부상자를 치료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학군을 구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계속해서 후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소토산에서 황화산성에 이르는 거대한 진영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채 거두지도 못한 솥단지에 뭉치다 만 주먹밥만 나뒹굴었다. 토성 벽에 쳐박혀서 창자 빠진 농민군에게 “고향은 어디고? 어쩌다 이 모양이 됐냐?”고 물어볼 겨를도 없이 훅하고 팔 잘린 시체가 또 던져지는 아수라지옥이 되었다. 

 

[11월 17일] 이곳마저도 공격을 받게 되자 다시 같은 달 17일 강경에서 김개남 부대와 합류하여 전라도 전주로 퇴각하였다. 11월 27일 최후 전투인 태인 전투에서 전봉준의 주력 부대가 패배하면서, 이후 동학군은 각개격파를 당하고 사실상 와해되어 정신만 남게 된다. 농민군은 치열하게 싸웠으나, 신식 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절규하며 던져야 하는 질문들

 

논산회맹을 전후하여 이상호 향토사학자는 의미심장한 질문 몇을 던지면서, 그 각각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 ‘공주대회전’의 의미가 남접이 입경(入京)을 위한 여러 전투 중 최북단의 전투로서 상징성뿐이라고만 한다면, 고부농민군이 서운하고 화를 내지 않겠는가?

 

* 논산시민이 의기를 모아 화를 내지 않으면 동학史를 남접 위주의 농민봉기에 그치게 하고 무장성 봉기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것이다. 논산의 동학도인들이 멀리서 온 동도를 지원하고 힘을 보태준 일은 측은지심으로만 남고, 황화산성에 뼈를 묻은 이들이 이루고자 했던 ‘만민이 평등한, 사람이 하늘인 세상’에 몸뚱이를 쉬이 내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접 지도자들이 합의한 항일연대론에 수긍하였기에 배를 열어 창자가 빠지기까지 싸운 것이지, 고종이나 대원군의 밀지 때문인지 어쩐지는 알 필요가 없다. 불살물, 불살인(不殺物, 不殺人; 죽이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을 앞세운 동학도인이 칼질보다 함성을 앞세운 이유를 어찌 알려 하지 않는가?

 

* 실제 동학농민군의 인명피해는 전투 중에 발생했다 보기보다는 잔인한 추격토벌전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그동안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다. 일본제국주의 종사자들이 내심 청일전쟁 후 조선에 지방주둔지나 주재소를 설정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천천히, 무참히, 토끼몰이식 작전”이 그렇다. 단순한 치안유지라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들에게 포위 섬멸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 어디에 그들을 목 없이 죽일 이유가 있는가? 유회군을 조직했던 유생조직, 일본과 협력했던 개화파 관료들에게 외세를 극복하고 조선을 지켜낼 능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는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황화산성 혼축토성에 서서 길을 막고 물어본다. 동북으로 계룡산 조망이 가능하고, 서북으로 강경의 새우젓 배가 보이며, 동남으로 대둔산이 밝게 빛난다. 

농수로엔 바쁜 일손이 기다리고 충혼탑의 애절함엔 동학당학살자들이 빠졌다.

 

[기록·정리] 이진영/성수용/전해주 기자 

[삽화·그래픽] 권현칠

<이 기획기사는 2020년도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취재한 것입니다.> 

 

ⓒ 놀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광고
광고

[여행] 폐교의 재탄생 & 추억의
광고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논산시·계룡시의회發 막장 ‘개그콘서트’ / 놀뫼신문
[인사] 논산시 2020년 7월13일자 / 놀뫼신문
논산시, 자가격리자 ‘실내운동 키트’ 제공 / 놀뫼신문
황명선 논산시장,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 위촉 / 놀뫼신문
[계룡시체육회 순례2 볼링협회] 계룡에서도 “스트라이크!” 외칠 날을 기다리며 / 놀뫼신문
[소통공간] 논산시의회 막장드라마와 ‘빌라도의 고백’ / 놀뫼신문
[인사] 계룡시 2020년 7월 6일자 / 놀뫼신문
제8대 전반기 김진호 의장 "논산시의회 의정활동 2년을 보고합니다" / 놀뫼신문
논산소방서, 119시민수상구조대 발대식 개최 / 놀뫼신문
[논산이야기] 우리 논산의 지명 어떻게 지어졌나? / 놀뫼신문
로고
개인보호정책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충남 논산시 시민로 402 (취암동)| Tel - 041) 733-4800~1 | Fax - 041) 734-5567
상호: 놀뫼신문 | 등록번호: 충남다01238 | 등록연월: 2006.06.30 | 발행인: 전영주 | 편집인: 전영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전영주
Copyright ⓒ 2007 놀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m480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