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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탐방] 조일텍스타일 오병숙·조강수 대표 “우리공장 면으로 마스크 만든다니 영광이죠!”
기사입력  2020/05/21 [18:20]   놀뫼신문

[기업탐방] 조일텍스타일 오병숙·조강수 대표 

“우리공장 면으로 마스크 만든다니 영광이죠!”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던 3월 어느날, 논산시 생활개선회에서는 회원들이 제작한 면마스크 3천 개를 논산시에 기부하였다. 한국생활개선 논산시연합회(회장·이미숙) 소속 솜씨맵시연구회는 1회용 마스크보다는 필터를 교환해 재사용이 가능한 면마스크를 직접 만들기로 하였다. 면직물업체에서 원단을 확보한 다음에, 12일부터 재단, 재봉, 다림질을 직접 하면서 한장 한장 제작하였다. 

그 면마스크는 독거노인 등 취약 계층에 나누어 주었는데,  마스크 제작용 면 원단은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었다. 논산일반산업단지 입주기업체인 조일텍스타일(대표 오병숙)에서 지원해 주었던 것이다. 민간기업, 민간단체의 아름다운 만남 현장이었다. 

조일텍스타일은 세계적 마스크팩 제조업체인 제닉 논산제1사업장 바로 옆에 있다. 2000평 대지에 건물이 1450평이니, 출입구쪽만 자유롭다. 총 9동의 건물에 면직물이 가득 차 있고 기계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물류 창고로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명함에 보니 동대문종합시장 C동 5002호에 서울사무소가 따로 있다. 조일직물, 영어로는 “조일 Textile”이고 이  상호 밑에 <면직물, 해지, 도비직 전문>이라 써 있다. Since 1968, 세어보니 52년 된 회사이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변화가 직접 생산에서 OEM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직접 생산에서 OEM으로 

 

성동산단 창립멤버이기도 한 조일은 강경 부곡동의 가내수공업 시대를 접고 성동으로 이사를 왔다. 현대화된 대량 생산공장 시스템으로 최신 기계를 설비하고서 7~8년 가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이제 공장 직접 돌리는 것은 어렵다 보고 그 동안의 노하우와 노훼어(거래처)를 총동원하였다. 대구나 경기도 동종계열 공장에 OEM 발주를 시작하였고, 부인 오병숙 여사가 구원투수로 나서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부부경영체제로 재출범하였다. 

서울사무소는 부친이 마련한 판매장이었는데, 이제는 서울사무소로 본격 출근하였다. OEM으로 이제는 직접 생산 현장을 떠나 유통판매에 올인하게 되면서 매출이 10배 이상 급증하였다. 조일이 판매하는 면제품은 선염(渲染)이다. 면실을 염색한 다음 그 실로 방직하는 선염제품이다. 이 제품 생산 라인은 원사 염색에서 시작된다. 대구에서는 원사염색에서부터 직조, 풀빼기 등의 공정을 거쳐서 면원단을 완성한다. 성동에서는 그 제품들을 물류 창고에 쌓는다. 서울 사무소에는 면직물 샘플이 도배벽지처럼 진열돼 있고 거기서 면의류 제조업체들로부터 주문을 받는다. 그 주문서에 따라 성동에서는 택배트럭을 불러서 실어 보낸다. 이런 경로로 생산되어 판매되는 조일텍스타일 면 선염지가 내수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전화위복 치고는 대규모요, 일견 너무 쉽게 이룩된 금자탑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일이 현재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에는 그만한 뿌리와 피땀이 숨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섬유’라고 하면 단연 대구다. 그런데 섬유공장 초창기 역사를 보면 강경, 유구, 대구다. 이야기는 6·25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후 강경에 갑자기 개성베가 몰려왔다. 광목 이불겉감을 생산하고 판매하던 개성 상인들이 피난 내려와 강경에 정착하면서 그 일을 강경에서 재개하였기 때문이다. 조사장의 선친인 조용일 창업주는 당시 직물공장을 하던 사람들과 계를 들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1968년 본인도 집에다가 공장을 들여놓았다. 이런 식으로 해서 강경 현지인도 합류한 결과 강경에는 가내수공업 직물업체가 60여개에 달하였다. 당시 강경과 유구는 선염에서 쌍벽을 이루었다. ‘부여=3천궁녀, 유구=3천공녀’라 했는데 유구는 자가드(곡선무늬) 같은 예술쪽 염색이 강세였고, 강경은 일자 또는 체크처럼 실용적인 무늬 로 나갔다. 

 

 

 

강경에서 흥성했던 섬유산업의 맥

 

어쨌거나 시대가 흐르면서 강경과 유구 섬유업은 대구쪽으로 그 바통을 넘겨주었다. 이 와중에 강경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독야청청한 공장이 조일직물이다. 창업주인 아버지 이름이 조용일. 첫 자와 마지막 자를 따서 지은 이름 조일직물은 70~80년대 기계가 50대가 돌아갔다. 4형제는 교수, 사업가 등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조강수 씨는 어려서부터 섬유계통에 눈이 떴으나 대학을 나와서는 피혁 계통에서 회사원으로 일하였다. 그러다가 1988년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호출을 받아 1999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경영수업을 받는다. 

조일직물은 2004년 법인화하면서 ‘조일텍스타일’로 이름을 바꾸면서 현대화를 꾀하였다. 1996년에 시작된 성동산단 1단지는 2004년까지 조성되었는데, 그 때 법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있던 기계를 처분하고 새 기계로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그러다가 10년쯤 전, 일하던 중 사고를 당하면서 OEM이라는 발상으로 재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당시 정황은 변신을 꾀해야 할 변곡점이었는데, 기계 숙련공 구하기도 어려워졌고 설비투자도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대변신 후 서울로 이사를 간 조사장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성동공장으로 내려온다. 강경에서는 라이온스도 했고 강경중학교 부부동반 동창회는 40여 년째 나가고 있다. 현재 성동 현장은 두 명이 근무한다. 면원단을 실어보낼 택배트럭이 오면 주문지로 배송하는 일 위주로 업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석민 물류팀장도 7년 전에 입사한 조사장의 동기동창이다. 이번 코로나19 마스크 원단 이야기는, 이영태 강경읍장에게서 처음 들었다. 면 원단 요청이 들어왔는데, 시중판매가는 오백만원 정도였다. 서울에 있는 조강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의하였다. “이건 돈 받을 일이 아니라 어려운 시국에 우리가 흔쾌히 동참할 기회다.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그리하여 논산시민 3천명에게 돌아갈 재활용 면 마스크 원단은 성동에서 지게차를 타게 된 것이다.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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