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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노트] 은진면 교촌리 장순자 어르신 “지나온 옛날 이야기하면 누가 좋아하나?”
기사입력  2020/03/18 [17:10]   놀뫼신문

[인생노트] 은진면 교촌리 장순자 어르신

“지나온 옛날 이야기하면 누가 좋아하나?”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는 사방 넓은 들이 펼쳐진 그 한복판에 있는 조용한 농촌마을이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이 마을로 시집와 육십 년 넘게 살아온 장순자(張順子, 83세) 할머니를 찾은 것은 봄이 한창인 3월 중순이었다. 할머니께 지나온 얘기를 해달라고 하니 대뜸 “지나온 옛날 이야기하면 누가 좋아하나?” 하시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푸셨다.


 

연무에서 태어나 은진으로 시집오다

 

할머니의 고향은 이곳에 멀지 않은 연무이다. 할머니의 부모님은 그곳에서 논 20마지기와 밭 3천 평 그리고 소 두 마리를 키우는 부농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결코 작지 않은 농사 규모였다. 그러나 5남5녀의 10남매 중 할머니가 아홉 번째라고 하니 아무리 부농이었다 하더라도 할머니의 부모님은 그 많은 식솔들을 먹이고 키우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아들 다섯은 모두 고등학교 이상 공부를 시켰다고 하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스무 살 때 은진면에 살고 있던 언니가 중매를 섰다. 남자는 평안남도에서 1.4후퇴 때 아버지와 형과 함께 피난하여 이곳 논산에 정착한 실향민이라고 했다. 그의 집은 꽤 많은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부자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작 결혼을 하여 분가를 했을 때는 전혀 도와주지 않아 둘은 무척 힘든 신혼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이곳은 황무지였는데, 논산시에서 개간하여 원하는 이들에게 땅을 장기 임대하여 주었다. 그래서 이곳을 새로운 마을이란 뜻의 신촌(新村)이라 부른다. 넓기는 했으나 농사를 짓기에는 거친 땅이었다. 둘은 이곳에 정착하여 땅을 5년 기간으로 임대하여 일구기 시작했다. 당시는 비료가 귀할 때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연무대 훈련소에서 나오는 인분을 퍼 날라다 땅에다 뿌리기 시작했다. 고된 나날이었다. 그러지 않고는 땅이 워낙 안 좋아 농사를 지을 재간이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복숭아나무 묘목을 구해서 그 땅에다 심기 시작했다. 또 밭을 일구어 조와 보리도 심었다. 소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도 키웠다. 복숭아나무가 커서 열매를 맺으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했기 때문에 생활은 항상 쪼들렸다. 그 사이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건강이 안 좋았다. 장에 이상이 생겨 항상 아팠고 힘든 일을 하지 못했다. 농사일과 집안일 그리고 애를 키우는 일까지 모두 할머니의 몫이었다. 그래서 혼자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제일 힘든 때였다고 한다.

그래도 해가 다르게 자라는 복숭아나무를 지켜보는 것이 할머니의 낙이었고 그것을 큰 위안으로 삼았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니 복숭아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그 복숭아를 서울로 가져가서 파니 돈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임대한 땅을 매입했고 생활도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동네에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다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수도와 전기가 늦게 들어왔다. 할머니의 아들이 5살 때였다고 하니 60년 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온 것이다. 그때 할아버지가 전기가 들어오는 마을사업을 주도적으로 했었는데, 그 바람에 할머니는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직접 들어본다.

“전기공사를 하는 기술자 청년 이십여 명 정도가 우리 집에 묵었어요. 거의 세 달 이상을 묵으며 그 해 여름을 우리 집에서 났으니 말도 말아요. 그 장정들을 재워주고, 밥 해 먹이고, 빨래 해주고, 새참까지 해 나르느라 정말 말도 못하게 고생했어요. 쌀이 귀할 때인데 일 년 농사지은 쌀을 다 먹고 갔으니까요.”

“그 해 여름은 유별나게 비도 많이 와서 그 기술자들이 일을 못하고 집에 있는 날도 많았어요. 그래서 공사가 더뎌 여름 내내 우리 집은 청년들로 북새통이었답니다. 그래도 힘든 일 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 개를 잡아 개장국도 끓여주었어요.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죠.”

“한 번은 새참으로 라면을 끓여 갖다 주려고 물지게에다 그 많은 라면을 담았어요. 그 무거운 것을 지고 가다가 미끄러워 넘어졌지요. 여름 장마로 진창인 논둑을 고무신을 신고 가려니 얼마나 미끄러웠겠어요. 나 다친 거보다도 라면 쏟은 게 더 속상하더라니까요. 그렇게 고생했어요.”

그렇게 전기가 들어오자 동네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선풍기를 켤 수 있으니 여름이 무섭지 않고, 냉장고를 들여놓으니 먹고사는 일이 한결 편해졌다. 텔레비전이 생기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재미있게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살림이 자연히 늘고 풍요로워지니 모두 살만해졌다.

 

 

다복한 가정을 이루다

 

유독 정이 많고 살뜰하셨던 할아버지는 10년 전 82세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남의 보증도 잘 서주었고 안팎의 궂은일도 내 일처럼 나서서 하곤 하던 사람이었다고 할머니는 회상하신다. 덕분에 할머니와 가족들이 고생 좀 했다고 하시며 웃으신다.

할아버지의 말년은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탓으로 일 년의 반은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병치레를 많이 하셨던 할아버지가 병이란 게 없는 좋은 데 가셔서 편안하게 잘 계실 거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 양반은 건강이 안 좋아서 정말 많이 고생했어요. 한 달에 약값으로 백만 원씩 나갈 정도였으니까요. 그 덕분에 식구들도 함께 고생 좀 했지요. 이제 그 고생 안 하는 편한 곳으로 갔을 거에요.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공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큰아들(공주 대성교회)과 홍성에서 경찰공무원으로 있는 둘째 아들은 워낙 바빠서 자주 들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할머니를 보러 온다고 한다. 대신 가까운 논산에서 교사로 있는 큰 딸이 반찬을 해 나르고 자주 들러 할머니를 살핀다고 한다.

할머니의 손주들은 모두 일곱이다. 할머니는 자손들이 모두 아무 걱정 끼치지 않고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잘 살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없이 큰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게 더 이상 무슨 바람이 있겠어요.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제 할 일 찾아서 잘 하고 있는데, 그 이상 바라면 안 되죠. 나는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복 많이 받은 겁니다. 인생 잘 살았지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할머니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시다. 여덟 살 때부터 올케 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는데, 당시에는 연무에 교회가 없어서 강경에 있는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돌아가신 남편은 장로였고, 아들은 목사이고, 할머니는 권사이시다. 모든 가족이 신앙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건강의 비결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도 많지는 않지만 손수 농사를 지으신다. 감나무 삼백 주, 그리고 밭농사로 고추와 깨와 콩을 심으신다. 이렇게 쉼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자신만의 건강비결이라고 말씀하신다.

“난 아직 아파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어요. 본래 키도 크고 아주 건강 체질이지요. 평생 남편보다 더 많이 일하고 힘도 더 썼지요. 그래서 그런가 몸이 아픈 곳 없이 아직은 건강해요. 오히려 요새 코로나 때문에 방안에만 있으니까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아요. 빨리 들로 나가서 일하고 싶지요.”

아들딸들이 ‘어머니 이제 그만 일하라’고 성화지만, 일 안하면 오히려 병이 생길 것 같다고 하신다. 다만 요즘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바깥출입을 많이 안 하시고 조심하고 있다고 하신다. “나 아프면 자식들 고생시키는 거니까, 항상 조심해야지요.”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 예쁘시다.

 


할머니는 말씀하시는 내내 손수 깎아서 준비하신 딸기와 참외를 자꾸 권하셨다. 딸기는 모두 꼭지를 따서 가지런히 놓으셨고, 참외도 균일하게 깎아놓으셨다. 그것만으로도 할머니의 예쁜 마음이 전해진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내 손에 바나나 한 개를 쥐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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