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놀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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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 제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의하고 있다. 헌법이 말하고 있는 이러한 영토의 개념은 국가의 영토에 관한 가장 전통적 관점인 지리적 측면의 영토개념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지리적 영토는 늘 국가 간 분쟁의 중요한 요인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토지는 인간이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래 인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기 때문에 넓은 영토를 차지하는 것은 국가의 세력을 결정하는 일차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전쟁사를 훑어보면 지난 19세기까지의 전쟁은 모두 지리적 영토의 확장을 목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양상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쟁들은 지리적 영토의 확장보다는 이념적 영토 확장이라는 측면으로 옮아가고 있다.
경제영토의 확장이 더 중요한 가치
20세기 이후 세계 각국의 관심사는 경제영토의 확장에 몰입되어 있다. 경제영토는 지리적 개념과 관계없이 각국의 경제규모가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가를 가늠해주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력의 상징이 되어 있다. G2, G20이나 OECD 등으로 대변되는 국제적인 회의체는 모두 경제규모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지리적 영토의 크기로는 세계 7위에 해당하는 인도가 OECD회원국이 아닌 반면 123위의 리투아니아는 회원국이라는 사실이 이 두 가지 영토개념 사이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 세계적으로 지리영토에서는 그리 대단한 편이 아니지만 경제영토의 관점에서는 그동안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지난 50여 년간 눈부신 속도로 이루어낸 우리의 경제적 성과는 이미 세계 교역량에서 10위권을 넘볼만큼의 수준에 이르렀고 삼성이나 LG, 현대자동차 등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세계의 어떤 기업과 겨루어도 이겨낼 만큼의 능력을 쌓았고 우리 경제영토는 이를 바탕으로 더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경제영토를 넘어 문화영토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 각국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크기가 국가의 경쟁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고 하는 개념이 문화영토의 개념이다. 지난 1960년대 우리나라 방송 음악프로그램의 주류는 미국의 팝송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이 주류였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 존 덴버, 마이클 잭슨 등이 우리에게 소개되었고 이들을 통하여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문화에 빠져들어 갔다. 우리 문화계는 외국문화계에 점령당했던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대한민국은 미국의 문화영토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영토의 시대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최근 듣기만 하여도 우리의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BTS의 성공신화는 이제 우리의 문화영토가 경제영토를 넘어서는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음을 보게 해 준다. 20세기말부터 한류(Korean Wave)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인 확산현상은 드라마에서 시작되어, 영화와 가요를 넘어 이제는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로 그 문화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물론 한국문화의 세계적 확산에는 정명훈, 정경화라든지 백남준, 윤이상과 같이 한류 이전에도 꾸준히 자신만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 온 예술가들의 공로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던 순수예술 분야보다 한류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의 확산은 대단한 폭발력을 지니고 전 세계에 우리문화를 알리는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연한 외국인 가수가 우리의 BTS라고 하는 뉴스는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제 우리는 경제영토의 성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인 콘텐츠를 무기로 하는 문화영토의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 전쟁은 그동안 우리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싸움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우리가 문화영토의 확장을 응원하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는 이 싸움이야말로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경제영토의 성장을 대신할 가장 효율적인 국력신장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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