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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이야기] 다시 생각하는 계룡산
기사입력  2019/10/16 [18:03]   놀뫼신문

▲ 김용수 조각가, 무림산방     © 놀뫼신문

 

우리 겨레의 삶은 산(山)과 친연이 높다. 개천의 단군 신화로 시작해서, 산소에 이르기까지 산을 껴안고 태어나 산으로 돌아간다. 그만큼 산은 겨레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 오늘도 전국 각처의 산신각에서는 향이 피어오른다. 그런 점에서 계룡산이 다른 명산과 다르다면 나라의 기도처인 중악전(中嶽殿)이 있고, 세상이 흔들릴 때마다 등장하는 변혁의 염원이 만들어낸 셀 수 없는 담론이 회자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계룡산은 산수와 지세 등 외적 요소뿐 아니라 우리에게 무형의 세계관 또한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계룡산은 백제가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계산(鷄山) 또는 계람산(鷄籃山)이라는 이름의 영산(靈山)이었고, 통일신라에서 계룡산으로 불렀으며 5악 중 서악(西嶽)으로 삼았고, 남악으로 경관을 정한 고려 때까지 중사(中祀)에 속하여 제를 올렸다. 조선에서 삼악단(三嶽檀-묘향, 계룡, 지리산)을 세웠는데 계룡산에 설치한 중악단(中嶽壇)만 남았다. 조촐하나 왕실에서 제를 지낸 궁궐 양식의 품격이 그대로 살아 있어, 지방에서 보기 드문 전통 건축의 백미다. 태조가 무학대사를 보내 창건(1394)하고 1651년 효종 때 폐지되었다가 고종 16년(1879) 재건하였다. 

계룡산(鷄龍山)은 겨레의 영산 백두에서 시작하여 태백준령을 타고 내리는 큰 줄기(白頭大幹) 사이, 전북 장수 육십령에서 빌미가 된 한 갈래가 다시 북으로 휘돌아 금남정맥(錦南正脈)을 이루고 그 끝을 장식하는 평지 돌출의 작지만 큰 산이다. 845.1m의 바위산으로 오를수록 정겹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한다. 여기 “작지만 크다”는 말은 정기(精氣)의 축적이 그만큼 옹골차다는 뜻이다. 이것이 계룡산이 기도처로서 이름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백두산 신령과 계룡산 신령은 동급”이라는 말들이 회자될 만큼 축기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이성계가 이곳을 도읍지로 정하고자 한 것은 계룡산이 고려 송악산과 매우 닮은꼴이어서, 고려 유신들 사이에 선호도가 높은 이유도 있었다. 최근까지 행정수도 이전 택지 후보 중 하나였고, 신흥 종교의 후천개벽 사상 중심지로까지 끊임없이 확장되어왔다. 그 까닭은 이러한 계룡산의 지정학적 위치, 지기의 온축, 풍수지형과 역사적 맥락 등이 추동력으로 작용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계룡산이 품은 뜻

 

우리가 산신제를 지내고 산을 영험하게 생각하는 인식은 그곳에 온 생명이 자라는 곳이기도 하지만,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구전 또한 겨레의식의 한 견(見)을 차지했을 것이다. 예부터 계룡산에는 신흥종교의 메카라 할 만큼 100여 종류의 종교단체가 세를 이루고 있었던 것도 다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삼군본부가 들어선 이후로 모두 흩어졌지만, 만약 그대로 온존했다면 살아 있는 종교박물관으로 세계사적 이목을 끌 수 있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할 수 있었고,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민족문화를 스스로 폄하하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일제를 거치면서 왜곡되었고, 서양식 교육 방법으로 이입된 세계관이 민족자산을 미신과 같이 호도하고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한일합방으로부터 100년 세월이 5000년 민족혼을 삼켜버린 꼴이 되었다. 과연 오천년 정신사가 ‘미신迷信’이라는 이 한 마디로 가름할 만큼 헛된 것이었을까? ‘미신’의 미(迷)는 ‘미혹할 미’로 ‘미혹하다, 헤매게 하다’ 등의 뜻이다. 쉽게 풀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미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속=미신” 등식이 성립하여 오늘도 곳곳에서 사단이 나고 있다. 무속은 그토록 사라져야할 악인가? 그런데 왜 무속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고, 무속 인들은 왜 계룡산을 찾아오는가?

『서양의 몰락』으로 유명한 20세기 독일의 문화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원시종교든 고등종교든, 내용에는 우열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종교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세련미를 더했을지라도 원형은 같다는 것이다. 그 원형이 바로 우리 세시풍속과 무속에 살아 있다. 종교, 정치, 예술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모두 무속에 닿는다. 쉽게 말하면 모든 종교는 샤먼을 그 밑뿌리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 무당의 무巫자 어원은 범어 ‘메다(Medha)’와 같다. ‘치료하다’ ‘지혜롭다’는 뜻이다. 고대사회에서 무당은 우매한 것이 아니라 천기를 읽고, 병마를 물리칠 수 있는 지혜를 소유한 영통한 능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귀신 쫒고 굿하는 것이 본업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자는 광명 같은 본성을 밝히는 선사(仙師)들이었다. 이는 내몽고 적봉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고조선 신상(神像)이 하나같이 명상 자세라는 것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고조선에서는 이들이어야 신의 영역인 소도(蘇塗)를 지키는 수장이 될 수 있었다. 소도가 등장했다는 것은 정교분리가 일정 부분 실현된 사회로 볼 수 있다. 

이로 보면 그간 “무속은 곧 미신”이라는 단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한 걸음 양보해, 굿거리만 해도 서양의 퇴마의식처럼 죽은 자의 원혼을 무자비하게 쫒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혼을 대접하고, 한을 풀게 하고, 달래서, 보내는 해원상생의 종교적 원형이 살아 있다. 따라서 굿은 한 문명사가 녹아 있는 보고라 아니 할 수 없다. 아버지 없이 처녀가 아이를 잉태했다는 것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지구생성과 괘를 같이하는 큰 바위 앞에서 치성 드리는 정성이 더 종교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은 형식보다 내면이 지향하는 세계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얀 사발에 물 한 그릇 떠놓고 하늘과 땅에 대한 감사,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나라의 평화를 기도하던 우리 할머니들의 기도야말로 그 정갈함에 있어서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순결한 종교행위인 것이다. 헌데 그 아름다운 풍속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 겨레에 이어져온 풍속과 무속에는 배달시대(倍達時代) 이래 하늘과 조상을 경외하고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여, 만물과 상생을 도모하는 농축된 지혜의 샘이 있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튼튼한 도덕적 기반 위에 서야 하는 당위성이 존재한다. 인간은 다중적이므로 “고등종교가 모두 옳고, 무속은 모두 그르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직자들의 타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요, 무속인들 중에는 민중의 애환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으나 다수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무속인들 또한 무속을 병들게 해온 때문이다.  

사회사학자 신용하 교수는『고조선 문명의 사회사』에서 고대 독립문명 차순으로, 수메르문명(5300)→ 이집트문명(5100)→ 고조선문명(5000)을 들고, 고조선은 인도와 중국문명 보다 앞선 잃어버린 독립문명 임을 밝혔다. 한반도-만주-몽골초원-시베리아-중앙아시아-북유럽까지 퍼져, 북방샤머니즘의 원조쯤으로 알던 텡그리즘(Tengrism, Tangurism)은 다름 아닌 단군(Tangra)을 숭배하던 고조선문명권의 공통신앙이었으며, 시베리아에서 들어 온 것이 아니라, 고조선 연방이 해체되면서 그 후예들이 유럽으로 진출하자 세계 곳곳에 확산되었던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고조선 후국 중 하나였던 훈족(흉노)을 필두로 서방 진출을 시도하자 유럽에서는 연쇄적인 민족대이동이 일어나 결국 서로마가 멸망하게 되는 큰 혼란을 겪었다. 그 결과 아틸라 훈 제국, 유연의 아발(Avar) 제국이 들어서고, 부여계가 발칸반도에 불가리아 1제국을 세웠다. 그 얼마 후 돌궐이 다시 발칸반도를 장악하여 셀주크,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세우자 동로마마저 멸망하게 된 것이다. 

서방으로 진출한 이들의 공통 언어는 고조선어를 조어(祖語)로 하는 우랄알타이어였으며. 현재 터키, 헝가리, 불가리아 등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터키는 지금도 고구려 역사를 배운다. 실제 불가리아에서 새해 첫 달에 여는 ‘굿거리(Kukeri)’ 라는 곰 축제가 있다. 더 놀라운 일은 불가리아 제1제국이 붙인 지명 발칸산맥(과 발칸반도)은 그 뜻이 ‘밝은 산(밝달)’으로 단군신(Tangra)에게 제천하는 성산(聖山)이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가 업신여기고 멸시했던 이웃 ‘당골네’는 단군신앙(Tengrism)을 지켜온 겨레의 성직자였으며, 아직도 흔히 쓰는 ‘단골손님’이라는 말과 처자들 고운머리에 매는 ‘댕기’가 다름 아닌 단군을 기리는 유습임을 알 때가 아닌가 한다.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 고조선문명을 창도한 적자임을 깊이 자각할 수 있을 때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세계를 하나의 꽃(世界一花)으로 필 수 있게 하는 염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기치를 다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도 계룡산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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