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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봉칼럼] 인생의 배낭 속에는
기사입력  2019/09/04 [11:40]   놀뫼신문

 

▲ 문희봉 시인, 전 대전문인협회장     ©놀뫼신문

 

흔히 노년(老年)을 상실의 세대라 한다. 상실당하기 전에 버릴 것을 스스로 버리는 일은 현명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이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 배낭은 가볍다. 과거에 내가 장관 자리에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은 내 부하였는데…. 과거에 묶여 있으면 현실 적응력이 떨어진다. 바보가 된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곁을 떠난다. 왜 그렇게 살려 하는가?

인생의 종착역엔 1등실, 2등실이 따로 없다. 60대는 직업의 평준화, 70대는 건강의 평준화, 80대는 생명의 평준화라 하지 않았는가. 있지도 않은 1등실, 2등실을 찾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간의 노화는 지력이나 체력에 앞서 감정에서부터 시작 된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 영혼은 세월을 초월하기에 비록 육체가 쇠하여 없을지라도 마음만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더 멀리 더 높이 여행하면서 즐거움을 지니고 살았으면 한다.

잘나고 못나고는 다 거기서 거기다. 삶의 끝이요 생의 종착지인 노년에 사람답게 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품 안에서 벗어나고, 조직에서 벗어나고,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고, 미움도 짐도 벗어 버리고, 원망의 괴로움을 끊어버려 배낭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탐욕이나 욕심을 버리는 일에 앞장서지 않으면 노후가 망가진다.

자유선언의 포즈, 마음을 비운 해탈의 포즈, 평심서기(平心舒氣)의 포즈로 한 번 남은 마지막 고개를 멋지게 넘어가자. 그렇지 않으면 노년의 인생이 불행해진다. 겨울산에 가면 옷을 벗은 나무들로 넘쳐난다. 그들은 맨몸으로 집을 지키고 있다. ‘두려워 말고 내려놓으라. 그래야 꽃피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도 언젠가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완전히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새싹이 돋고 꽃이 핀다.

인생의 막바지에서 인생의 배낭 속에 꼭 담아야 할 것은 즐길 것(樂)이다. 낙(樂)이 없는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인 연명일 뿐이다. 흔히 등산의 쾌감을 ‘마운틴 올가즘’이라고 한다. 등산이든 무슨 취미든 최고의 낙(樂)을 올가즘이라 아니하던가. 살아있을 동안, 올가즘을 최대한으로 누리다 가는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겠다. 낙(樂)이 없는 인생은 권태의 연속뿐이다. 

거기에 건강, 밥을 굶지 않을 정도의 재산, 일거리(事), 배우자가 함께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만점 노후 생활이다. 마음 나눌 이들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요 기쁨이다.

똑같은 소금도 대상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진다. 미역에 뿌리면 팔팔하게 살아나지만, 배추에 뿌리면 시들시들 죽어버린다. 똑같은 물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생산하고, 뱀이 먹으면 독을 생산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사는 사람은 즐거울 낙(樂)이요, 불평하고 사는 사람은 괴로울  고(苦)로 바뀐다. 낙(樂)과 고(苦)는 하늘과 땅 차이다. 고상한 취미 하나 갖고 사는 사람의 노후는 잘 닦여진 고속도로다. 왕복 10차선 도로에 막힘이란 게 없다.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목적지까지 ‘가다 쉬다.’ 없이 달릴 수 있다.

내가 편할 때 그 누군가가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는 편안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찾아온 신중년의 사랑은 그 나이만큼 아름답고, 나이만큼 절절하고, 그 나이만큼 아프고, 그 나이만큼 질긴 인연이라 하는가 보다. 

인생의 겨울이 왔다고 낙심하거나 서러워할 것이 없다. 나무도 나이가 차면 잎도 떨어뜨리고 줄기의 탄력도 줄어든다. 자연의 이치, 세상의 이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주름은 많아져도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웃음 잃지 않고, 기운 넘치게 사는 것이 나이 들어 멋지게 사는 길이다.

당신의 배낭 속에는 무엇이 담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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