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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봉칼럼] 가로등
기사입력  2018/10/25 [13:00]   놀뫼신문

文 熙 鳳 (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내가 사는 곳은 6m 골목길에 접해 있었다. 승용차들이 한쪽에 주차돼 있어도 일방통행이 가능한 골목이다. 골목길 입구에 서면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달음에 내달리면 좌우 살필 것도 없이 쭈르르 내 집에 내닿을 수 있다. 5도 정도의 완만한 경사가 내 걸음을 빠르게 한다. 늦은 시각 집에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에 접어들면 가로등이 20~30m 간격으로 사열병처럼 늘어서서 나를 반긴다. 밤을 대낮처럼 밝히고서 나를 맞는다. 나뿐만이 아니다. 이 골목에 사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구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맞아 준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가리지 않는다.

가로등은 정말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구를 편애한다거나, 누구에게만 관심을 쏟는 것이 아니다. 키가 훌쩍 크고 핸섬하게 생겨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타입으로 남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다. 그래서 늘 칭찬을 받는다. 남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다. 남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리들의 경우 높은 데에 살다 보면 어깨에 힘을 넣는 것(?)이 보통이다.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높은 데에 살다 보니 목에도 힘을 준다. 음성에도 힘이 들어간다. 대개의 경우 갑자기 달라졌다는 평을 듣는다. 높은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가로등은 높은 데에 매달려서 인간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鬪足)을 다 내려다보며 살아가지만 안하무인의 그런 기색은 없다. 천성적으로 그렇게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이웃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뽐내는 기색도 없다. 으스대지도 않는다. 겸손이, 사양이 몸에 배어 있다. 베풂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진정한 봉사란 이렇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듯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봉사란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울 눈(雪) 속에 파묻혀 추위에 떨면서도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 속에서도 불평을 모른다. 어두워지면 불을 밝히고, 날이 새면 제 스스로 불을 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 일 년 내내 몸이 불편하다든가 하여 앓아누워 있는 법이 없다.

일찍 출근하여 늦게 퇴근한다. 2교대도 아니고, 3교대도 아니다. 혼자서 도맡아 하고 있다. 아니, 출퇴근이 없다. 일 년 내내 꾀병을 부리지 않고 근무하는 걸 보면 꽤나 고지식한가 보다. 시류에 휩쓸린다거나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법도 없다.

인간들 같으면 징검다리 휴일을 맞으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놀 날만을 생각할 텐데 고지식한 가로등은 그런 날을 맞아도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을 매단 몸체는 맘이 좋다 보니 매도 많이 얻어맞는다. 병정놀이하던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총대로 한두 대씩 가격한다. 초저녁인데도 골목길을 누비는 젊은이들은 옆차기 세례를 보낸다. 사정도 없다. 어느 술 취한 남자는 따끈한 차 한 잔(?)을 무상으로 대접하는 성의까지 보인다. 아니 한 잔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지 다리 한쪽을 기둥에 올려놓고 호스를 뽑아 주입한다. 추운 겨울날 늦은 시각에 군고구마 하나 갖다 주는 사람이 없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꼬마들은 가로등이 참새라도 되는 양 돌총을 쏴 대기도 한다. ‘누가누가 잘하나.’의 시합을 벌이는지 동글동글한 돌을 마구 던져 댄다. 어떤 것은 얼굴에 상처를 입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일그러진 모습으로 서 있는 것들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름 모를 사람이 베푸는 친절이다. 그런 친절 때문에 그나마 삶의 보람을 느낀단다. 예고 없는 입맞춤이라든가, 열정적인 포옹으로 외로움을 달래 주기 때문이다. 숨이 콱콱 막힐 정도의 포옹엔 할 말을 잊는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주위를 보살피며 사는 생활에서 보람을 찾는 가로등의 사고(思考)가 부럽다. 욕심부리지 아니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봉사하며 희생하는 삶이 무척 부럽다.

봉사의 참 의미를 알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가로등이 부럽다. 거만하지 않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가로등의 철학이 부럽다.

가을 벌판 황금색 물결을 보라. 속이 빈 놈은 고개를 하늘로 곧추고 서 있지만, 알찬 결실을 한 놈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외형의 미가 아닌 내면의 미를 추구하는 벼 이삭의 철학도 가로등의 철학과 상통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오늘도 밀린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하게 되었다. 추위에 떨면서도 부동자세로 서서 나를 맞는다. 안면에는 웃음까지 보인다. 늦은 시각 나 말고는 지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 같으면 한눈을 팔 시각인데도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나 한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밀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허벅지살을 꼬집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졸아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고마울 뿐이다.

집에 들어와 TV를 켜니 서울의 야경이 화면 가득 화려하다. 아, 서울의 가로등들도 이곳의 저들과 다름이 없구나. 나도 모르게 저들이 파업이라도 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얼굴이 붉어진다.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촛불과 같은 사람, 소금과 같은 사람을 이 사회는 요구한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혀 주는 촛불, 무미건조함을 약간의 짭짤한 맛으로 변화시켜 주는 소금이 이 세상을 밝고 명랑하게 해 준다.

가로등과 같은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 간다면 우리의 사회는 웃음꽃이 만발하고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지금도 밖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전선(電線)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사람들의 옷깃을 세우게 한다.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시루떡이라도 한 접시 가지고 나가 외로움도 달래 주고,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도 해 주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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